[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13)

  • 입력 1998년 1월 15일 08시 08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81〉 첫번째 방문을 열고 들어선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내 눈앞에는 뜻밖에도 낙원의 꽃밭이 아닌가 싶은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싱싱한 푸른 나무에는 황금빛으로 익은 과일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새들은 맑고 고운 소리로 우짖고 있었습니다. 더없이 맑은 냇물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흘러내려 대지를 적시고 있었고, 꽃들은 만발하여 그윽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나는 홀린 듯한 얼굴로 그 정원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정말이지 그 정원은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나는 나무 사이를 한가롭게 거닐며 산들바람을 타고 오는 꽃향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셨습니다. 새소리와 물소리가 어우러지는 그 묘한 소리의 조화에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익을 대로 익은 사과들의 그 빨갛고 노란 색깔에도 눈길을 보냈습니다. 사향과 용연향도 따를 수 없는 마르멜로의 향기도 맡았습니다. 또, 설탕을 탄 셔벗 수보다도 달콤한 배와 홍옥 같은 살구도 따먹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정원에 묻혀 몇 시간을 보내다가 나는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첫번째 방에서 나온 나는 전과 같이 문을 닫고 쇠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나의 침실로 가 죽은 듯이 잤습니다. 첫번째 방의 그 신비로운 정원을 구경하고 나왔을 때서야 나는 마흔 명의 처녀들이 떠난 자리의 그 적막감과 고독감 따위를 씻은 듯이 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다시금 나는 처녀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곁에 누워 있어야 할 처녀가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 나를 못견디게 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다른 아무도 없는 침상에 혼자 일어나 앉은 나는 중얼거렸습니다. “오, 어제 아침만해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지. 밤새도록 함께 쾌락을 나눈 그 아름다운 처녀는 감동에 찬 눈빛을 하고 내가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그런데 오늘 아침은 나 혼자로군.” 이렇게 말한 나는 목욕탕으로 가 스스로 목욕을 했습니다. 어제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새처럼 재잘거리는 서른아홉 명의 처녀들이 나를 에워싸고 목욕을 시켜주었습니다만 그날 아침은 나 스스로 목욕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그날 하루도 나는 마흔 명의 처녀들을 그리워하면서 그 적막한 궁전에서 혼자 지냈습니다. 밤이 되자 그녀들에 대한 그리움을 견딜 수 없어 열쇠꾸러미를 들고 가 두번째 방문을 열어보았습니다. 두번째 방문을 열자 내 눈앞에는 높은 대추야자나무가 우거지고 졸졸대는 냇물이 흐르는 넓은 들이 펼쳐졌습니다. 시냇물 가에는 나직한 장미와 소향 덤불이 우거져 있고, 그 일대에는 온통 쥐똥나무 들장미 국화 제비꽃 백합 수선 마요라나 질리플라워 등이 만발하여 있었습니다. 그 향기 높은 화초 위로 산들바람이 스치면서, 꽃향기는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그윽한 그 향기를 들이마시며 시냇가를 거닐고 있으려니까 내 가슴은 기쁨으로 충만되었습니다. 나는 더없는 즐거움에 젖어 있다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밖으로 나온 뒤에는 문을 걸어 잠그고 침실로 돌아갔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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