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 (667)

  • 입력 1998년 3월 14일 20시 56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135〉

“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묻어주기 위해서 떠나지 않겠단 말이지요? 나는 당신의 황소 고집을 꺾을 자신도 없고, 시간도 없소. 정히 나를 도와 시체를 매장하는 일을 하겠다면 우선 옷이나 갈아입도록 하시오.”

이렇게 말한 검은 옷의 사내는 검은 옷 한 벌과 얼굴을 가릴 수 있는 검은 천 한 장을 오빠에게 내어주었습니다. 오빠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뒤 그 사내를 따라 나섰습니다.

검은 옷의 사내와 오빠는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채 매장소로 갔습니다. 매장소에는 정말 수십 구의 시체가 즐비해 있었습니다. 말라 비틀어진 노인의 시체가 있는가 하면, 어린 아이의 시체도 있고, 건장한 남자의 시체가 있는가 하면, 아까운 나이의 처녀 시체도 있었습니다.

“오늘 중으로 나는 이 시체들을 모두 묻어야겠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밤 사이에 올빼미들이 날아와 시체를 마구 찢어발겨놓을 테니까요. 그러니 당신은 나를 대신해서 시내로 가 시체들을 운반해오도록 하시오. 이 당나귀를 끌고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보면 빨간 천이 내걸려 있는 집들이 있을 거요.

그 집 안에 들어가보면 틀림없이 시체가 있을 거요. 이 도시 사람들과 나 사이에는 한가지 약조가 되어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집 앞에 빨간 천을 내걸기로 말이오. 그 신호를 보고 내가 집 안으로 들어가 시체를 내어올 수 있도록 말이오.”

“당신은 아주 영리한 사람이군요.”

이렇게 말한 오빠는 당나귀를 몰고 시내로 향했습니다.

시내에 도착한 오빠는 골목골목을 누비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빨간 천이 내걸린 집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오빠는 그 집 앞에 당나귀를 세워놓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빠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 하나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시체는 방 안에 있어요. 제 남편이에요. 오늘 새벽에 죽었어요.”

“아, 그랬군요. 정말 안됐습니다.”

오빠는 이렇게 말하고 방 안으로 들어가보았습니다. 방 안에는 과연 남자의 시체가 놓여 있었습니다.

“자비로우신 알라시여! 이분의 영혼이 편히 쉬게 하여주소서!”

오빠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 뒤 시체를 들쳐업고 나왔습니다. 시체가 나갈 때 부인은 억제된 소리로 울고 있었습니다만, 밖에까지 따라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무서운 재앙이 또 있을까?”

오빠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시체를 당나귀 등에다 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얼마간 골목을 걸어갔는데, 또다시 빨간 천이 내걸린 집이 눈에 띄었습니다. 오빠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는 젊은 아낙의 시체였습니다. 가장은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습니다. 오빠는 말없이 시체를 업고 나왔습니다.

시체를 실은 당나귀를 끌고 오빠는 서둘러 매장소로 갔습니다. 매장소에는 예의 그 검은 옷의 사내가 구덩이를 파고 있었습니다. 오빠는 싣고 온 시체를 내려놓고는 또 다른 시체를 실어오기 위해 시내로 갔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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