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95)

  • 입력 1998년 4월 14일 08시 09분


제11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20〉

부하들이 모두 독 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자 두목은 한 사람씩 점검을 해보았다. 그리고 종려섬유로 뚜껑을 덮어 내용물을 숨기면서도, 부하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했다. 그런가 하면, 길 가던 사람들이 수상쩍게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기름이 채워져 있는 독에서 기름을 퍼내다가 나머지 서른일곱 개의 독 바깥쪽에 기름칠을 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두목 자신은 기름 장수로 변장을 했다. 그리고는 서른여덟 개의 독을 싣고 시내로 향했다.

저녁 때쯤 해서 두목은 무사히 알리바바의 집 앞에 당도했다. 일이 순조롭게 풀리려고 그런지 그때 마침 집 주인처럼 보이는 남자 한 사람이 대문간에 나와 앉아 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 남자야말로 알리바바였는데, 그는 저녁 예배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면서 선선한 저녁 바람이 불고 있는 대문간에 나와 앉아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도둑의 두목은 굳이 그 집 대문을 두드리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두목은 알리바바 앞으로 가 이마에 손을 대고 인사를 한 다음 말했다.

“저는 멀리 다른 도성에서 온 기름 장수입니다. 이 고장에는 처음인데다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오늘 밤을 어디서 묵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나그네가 하룻밤 묵어가게 해주시고, 말들을 댁의 안마당에 쉬게 해주신다면 그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낯선 기름 장수의 부탁을 받은 알리바바는 상대가 숲 속에서 자신이 본 도둑의 두목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경의를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더없이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 기름 장수여, 정말 잘 오셨습니다. 비록 저의 집이 누추하지만 하룻밤을 묵으실 수는 있을 것입니다. 아무 염려 마시고 들어오십시오.”

알리바바는 당분간 낯선 사람을 경계해야 할 처지였건만, 초라한 기름 장수를 보자 금방 마음이 움직이고 말았던 것이다. 가난하여 온갖 고생을 했던 자신의 지난날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알리바바는 기름 장수와 기름 장수가 몰고온 말들을 자신의 집 안마당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마르자나와 남자 노예들을 불러 손님을 도와 독들을 말에서 내려주고, 말에게는 먹을 것을 주라고 했다. 충실한 남자 노예들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기름 장수의 독을 내려 마당 가 담장을 따라 나란히 늘어놓는 한편, 말에게는 여물을 갖다주었다.

한편, 알리바바 자신은 손님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안내하여 상좌에 앉혔다. 이어 저녁 식사가 들어왔으므로 그는 손님과 더불어 식사를 했다.

기름 장수로 변장한 도둑의 두목은 식사를 하면서도 연방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집안 사정을 살폈다. 칼을 든 흑인 노예들이 어디에 배치되어 있을까 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무엇 하나 특별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집안은 더없이 조용하고 평온할 뿐이었다. 게다가 주인은 친절하기만 했다. 그래서 두목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놈은 철저하게 교활한 놈이라 빈틈없는 준비를 해둔 것이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태연히 식사를 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두고보라고. 밤이 깊어지면 갑자기 들이닥쳐 목을 날려버릴 테니.”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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