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대의 매킨토시, 두 대의 일반 컴퓨터, 네 개의 책상과 사무용 의자, 복사기와 프린터기, 회의용 테이블, 냉장고, 에어컨, 인쇄기가 있던 텅 빈 옆방에 둘러싸여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사무기기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오히려 다음 문제였다.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배반감과 고립감이었다.
거의 일주일 동안 텅 빈 사무기기뿐인 사무실에 출근해 건물 주인에게 전화를 걸다가 퇴근했다. 건물이 은행으로 넘어간다는 소문까지 도는데 주인과는 연락 두절이었다. 자칫하면 사무실 전세금조차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 나의 사정을 알게 된 대학 동창 준원이 한적한 바다를 끼고 있는 지방 도시의 서점 이야기를 꺼냈다. 대학 바로 앞에 자리한 서점으로 자신의 친구가 7년 동안이나 운영해왔다고 했다. 그 친구는 캐나다 이민을 가게 되어 서점을 내놓았는데 점원을 세 명쯤 쓰는 규모이고 대학 교수들과 관계가 좋아 교재를 많이 취급하며 출판사와 도매점과도 오랫동안 거래를 터와 신경 쓸 일이 없다고 했다. 방학이 끼여 있어 몇 개월은 매상이 비겠지만 그 외의 달은 수익도 아주 안정적이라고 전했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는 건물 주인에게 계속해서 전화질을 하면서 문득 잠들어 있을 미흔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미흔을 못 보고 산 것 같이 느껴졌다. 미흔의 잠을 깨우고, 미흔을 활짝 웃게 하고 싶었다. 아파트가 순조롭게 팔리고 전세금만 무사히 받게 되면 그 한적한 바닷가의 소도시로 가서 서점을 계약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바닷가나 산 언덕쯤에 놓인 시골집을 한 채 구입할 작정도 했다. 생각해 보니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를 끌고 가 줄 희망이란 없었다. 엄밀하게 말해 그 실패는 나만이 아니라 집단적인 실패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가망 없는 실패였고 만연한 실패였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생각보다 젊은 나이에 생을 과단성 있게 바꾸게 된 것은, 우울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흐뭇하기도 한 기분이었다. 뭔가를 잃지 않는다면 빠져나가기란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늘 그랬지만 생이란, 큰 흐름 속에 나를 맡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부동산 업자와 처음 그 마을로 가던 날 포장이 되지 않은 계곡길에서 노인 두 사람을 보았다. 털모자를 쓰고, 물이 다 빠진 누비 점퍼를 입고, 군인 바지를 입은 노인과 머리를 죄수처럼 자르고, 짙은 청색 외투를 입고 솜바지를 입은 노인이었는데, 일흔 살은 족히 되어 보이는 늙은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호주머니 속에 양손을 집어넣고 다리를 오자로 벌리고는 걷는지 서서 실랑이를 하는지 모를 지경으로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길에서 남은 생을 마감하기로 작정한 사람들 같았다. 곁을 지나다 보니 군인 바지를 입은 남자의 바지가 젖어 있었다. 오줌을 싼 것 같기도 했다. 누비바지를 입은 남자가 군인 바지를 입은 남자에게 뭐라고 나무라는 것 같았다.
―오늘 근처 읍에 장날이라 한 잔씩들 했구만요. 저 두 노인은 자식들이 모두 도시로 나가고 각각 혼자 살았는데 얼마 전부터 한 집에 합쳐서 산답니다. 여기 노인들은 대부분 혼자 사는 독신자들이지요.
<글: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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