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차 문을 열고 고개를 안으로 디밀었다.
―차가 갑자기 멈춰 섰어요.
남자는 차 문을 활짝 열어놓고 보닛을 열었다. 남자는 한참 동안 살펴보더니 애매하게 말했다.
―이상이 없어보여요. 배터리가 나갔을 수도 있지만, 여기까지 달려온 것을 보면…, 혹시 기름은 들어 있었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확인을 못했어요.
남자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내 얼굴을 잠시 쳐다보았다.
―기름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남자는 손을 탁탁 털며 말했다. 기름 게이지를 본 지가 한참 된 것 같았다. 가끔 기름을 가득 넣고 나면 한동안 신경 쓰지 않고 지내곤 했다. 기름이 떨어져 차가 길 한가운데서 퍼지다니, 한심했다.
―먼저 기름을 사와야 확인할 수 있겠습니다.
남자가 다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뭔가 확인이라도 하려는 눈빛으로 남자는 눈을 몇 번인가 깜박거렸다. 내 마음 속의 물이 출렁 흔들리며 사방으로 물방울이 튀었다.
얇고 길다란 외꺼풀 눈. 눈을 깜박이는 것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어떤 의미를 담은 감정을 보낼 때 하는 특별한 동작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현실에 대해 거리감을 자주 느끼는 사람들의 사소한 버릇일 수도 있었다. 희고 얇은 피부에 내성적으로 보이는 연약하고 냉소적인 눈빛을 가진 남자였다. 나는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제 차를 타고 가죠. 나는 농협에 잠시 들렀다가 돌아올 거니까 그 사이에 기름을 사면 되겠네요.
남자의 차는 체로키라는 외제 왜건이었다. 그는 차문을 열어주었다. 차 안에서 남성 향수 냄새가 훅 끼쳐온다. 아빠를 사랑하여 엄마에게 경쟁심을 일으키는 모든 소녀들을 순종하게 만드는 카리스마적인 냄새. 여자를 다시 무력한 소녀로 만드는, 비난받아 마땅한 향기.
―언덕 위 집에 새로 이사오신 분이죠?
남자가 의외로 나를 알고 있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 언덕 위의 세 번째 집은 나의 집입니다.
나는 약간 놀라며 그를 쳐다보았다. 남자의 옆모습이 얄팍하고 단정했다.
―빈집인 줄로 알았어요.
―거의 빈 집이죠. 나 혼자 사용하고 있어요. 가족들은 방학이나 주말에 어쩌다 몰려오죠. 난 이 지역 관할 우체국 일을 봅니다.
―우체국?
―예. 사설 우체국이죠. 이곳에 오면서 우체국을 샀어요.
―우체국장님이세요?
―그런 셈이죠.
그가 고개를 돌려 나의 옆얼굴을 힐끔 보았다. 반팔 면셔츠와 플란넬 바지를 입고 발목까지 올라온 짧은 부츠를 신었다. 모두 베이지색이어서 편안해 보이지만 짧게 말하고 입을 꼭 다물었을 때는 단호하고 차가운 느낌이었다.
<글: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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