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현장21]홍세화 씨 연세대 강연

  • 입력 2000년 11월 24일 16시 40분


옛날 과자 중에 '쫀득이'라는 게 있다. 겉절이 먹듯 그냥 손으로 찢어 먹기도 하고 불에 구어 먹기도 한다. 기막힌 맛이라곤 할 순 없지만 구수한 편이다.

지난 21일 귀국한 홍세화씨의 강연을 들으러 가면서 '쫀득이' 씹는 맛을 추억했다.

묘사와 현학을 생략한 채 구수한 언어로 바라본 현실.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 '세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나눈다' 같은 홍씨의 책에서 느낀 게 겨우 이 정도라면 너무 소박한 것일까?

홍세화씨 강연 동영상보기

이날 70석 규모의 반원형 소강당은 청중들로 꽉 찼다. 주최측인 연세대 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이 마련한 보조석마저 모자랄 정도. 차가 밀렸는지 홍세화 씨는 30분 늦은 오후 6시 30분에 강연장에 도착했다.

약 30분간 이어진 강연에서 홍씨는 톨레랑스(관용)의 의미, 신자유주의, 한국의 지식인 등을 얘기했다. 몇 대목에선 힘을 주기도 했지만 대체로 낮고 침착한 목소리였다.

톨레랑스(관용)는 홍씨의 책에서 강조돼 온 개념. 홍씨는 톨레랑스는 하나의 에스프리(정신)이며 이런 정신이 결여된 한국 사회를 보며 비애를 느낀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홍씨는 "프랑스 같은 개인주의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한다면 사회자체가 무너지고 맙니다."고 말하고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톨레랑스의 의미는 각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홍씨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프랑스인들이 어떻게 저항하고 있는지를 소개했다. "작년 프랑스 남부 도시에서 농부 10명이 맥도날드 철거 운동을 벌였습니다. 마침 휴가철이었는데, 이 운동에 10만 명의 프랑스인이 동참했다고 합니다."

이날 홍씨가 가장 힘주어 말한 부분은 지식인 문제였다. 특히 현실 참여에 관심이 없는 한국 지식인들을 홍씨는 강하게 비판했다. "푸코 같은 지식인은 제자들과 함께 프랑스 감옥 감시대원으로 활약했습니다. 부르디외의 콜레주 드 프랑스 취임 강연 주제는 '교수란 무엇인가?'였습니다." 이어 홍씨는 앎이란 '유리한 자기매김'을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되며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언론도 도마에 올랐다. 홍씨는 국내 언론에 '공익' 개념은 없으며, 발행부수로 신문의 영향력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조선일보가 가장 '추악하다'고 평하면서 그 이유로 '의도된 왜곡', '기득권 세력을 비호하는 역할' 등을 꼽았다.

강연 이후 벌어진 토론에선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프랑스의 제국주의를 꼬집는 학생들이 많았다. 외규장각 고서 맞교환 방식에 관한 질문도 나왔다.

"잘못된 일이기는 하지만 그 일은 프랑스 정부조차 도서관을 장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도서관 사서가 '국가권력'이 자신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항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가권력과 한 개인의 의견이 부딪힐 때 개인이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아직 프랑스의 톨레랑스와 한국 사회의 간격은 커 보였다.이날 강연은 홍씨의 독특한 '택시운전사론'으로 끝났다. "손님들은 모두 자기가 갈 목적지만을 말합니다. 하지만 택시운전사는 갈 길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목적지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 갈 길까지 아는 사람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한달 간 체류할 예정인 홍씨는 28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의 안티조선시민강좌에서 한번의 강의를 더 가질 예정이다. 12월엔 '왜 톨레랑스인가?'라는 번역서를 펴낼 예정이고, 내년 초엔 언론, 교육, 지식인 문제를 다룬 에세이를 출간할 예정이다. 현재 홍씨는 김정란, 진중권, 김규항 씨 등과 함께 '아웃사이더'의 편집 위원으로 있다.

이날 홍씨는 "내후년 경엔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안병률/동아닷컴기자 mok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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