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연주가의 조건으로 굳이 더 많은 것을 찾아내야 할까.
이유라. 그가 소리소문 없이 왔다. 23일 서울 사간동 금호리사이틀홀에서 단지 200여명의 청중들만을 앞에 놓고 고국 데뷔연주회를 가졌다.
“가만 보세요. 저놈이 여간내기가 아닙니다.” 한때 유라를 가르친 원로 바이올리니스트 양해엽이 객석에서 기자에게 속삭였다. “조그만 아이가, 누구의 흉내도 내지않는 자기만의 음악을 갖고 있어요. 군더더기 하나 없이 아주 또릿해요….”
피로에 지쳐 잠시 눈을 감고 있던 기자의 귀에 확, 불길이 이는 듯한 현의 분산화음이 들려왔다. 조그마한 열다섯살 소녀의 몸에서 저런 소리가 뿜어져 나올 수 있을까! 확실한 활긋기(運弓)와 고른 조약돌이 쏟아지듯 날렵한 왼손 놀림(運指)로 그는 지극히 절제된, 그러면서도 강력한 소리의 세계를 빚어내고 있었다. 브람스 3번 소나타의 3악장, 그는 물어뜯듯 강력한 활놀림을 구사하면서 기자의 가슴을 쥐었다 놓았다 했다. 정경화를 일컬어 누군가 한국의 암호랑이라 했던가. 호랑이는 한 마리가 아니었구나!
이유라. 의사인 아버지 (아주대 병리학과 이기범 교수)와 고등학교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첫딸로 출생했다. 세 살 때, 어머니가 이따금 치던 피아노에 앉더니 왼손 반주까지 제대로 맞는, 완전히 새로운 선율을 즉흥연주하기 시작했다.
“얘는 음악을 시켜야 하겠어.” 네 살 때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김남윤에게 레슨을 받기 시작했는데 1년만인 다섯 살 때 신문사 주최의 콩쿠르에서 우승,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일곱 살 때는 KBS교향악단과 브루흐의 협주곡 1번을 협연했다. 현악 마니아인 금호그룹 박성용 현 명예회장이 놀라 전화를 했다. 이것저것 묻기만 하는 낯선 남자에게 어머니가 물었다. “대체 누구세요?” 말수 적은 박회장은 전화를 끊어버렸지만 장학금과 악기를 책임지는 유라의 후원자가 됐다.
아홉 살 때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입학, 바이올린 명교사의 대명사인 도로시 딜레이와 강효 교수에게 배우기 시작했다. “유라는 매우 이지적이죠. 다른 사람에게서 영향받지 않는 매우 독자적인 연주를 합니다. 여러 신동들을 보아왔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한 개성을 갖고 있어요.” 딜레이는 미국 음악지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미 그순간 그는 날개를 달고 있었다. 이듬해 현악 명문 ICM과 계약, 열두 살 때 데뷔 연주를 가지면서 미국 공영방송 연합체인 ‘National Public Radio’가 선정하는 ‘올해의 데뷔연주가상’을 덥썩 거머쥐었다. 말레이시아의 세계 최고층 ‘데완 페트로나스’ 빌딩 완공과 페트로나스 홀 개관을 겸해 열린 말레이시아 필하모니 창단연주회에서는 사라사테 ‘카르멘 판타지’를 연주해 ‘타임’으로부터 “단연 콘서트의 하이라이트는 유라였다”라는 격찬을 받았다. 미국 수도의 자존심을 대표하는 워싱턴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카네기홀 연주에 협연자로 나서면서 새 밀레니엄의 장도 힘차게 열어 젖혔다.
“한 시대가 주목하는 신동으로 만족하지 않아요. 음악은 세상 어디에나 있지만 시간을 초월해 영혼에 위안을 주는 음악은 드물죠. 시대가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연주가로 꼭 남고 싶습니다.”
연주 뿐 아니라 그의 야무진 다짐 또한 도무지 열다섯 답지 않다. 유라는 2001년 9월 21일 LG아트센터 초청독주회에서 보다 많은 고국 음악팬들 앞에 선다.
▽출생〓1985년 5월31일 서울 차병원
▽가족〓아버지, 어머니, 아홉 살 아래 여동생 유정이
▽좋아하는 연주가〓야샤 하이페츠,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하이페츠의 기교와 오이스트라흐의 힘을 겸비하고 싶다)
▽취미〓스포츠. 배구가 좋지만 손가락을 다칠까봐 요즘은 하키에 몰두.
▽그밖의 취미〓E메일이 처음 나올 때부터 열광했다.
▽하루 일과〓연습은 피곤한 시간을 피해 주로 아침에. 꼭 밖에 1시간 나가서 운동이나 산책을 한다. 집안에 있으면 한정된 음악에 갇힌다.
▽좋아하는 음악〓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과 바그너의 오페라(소녀치고는 너무 ‘헤비’한가?). 재즈는 종종 듣지만 최신 팝은 잘 모른다.
▽좋아하는 책〓‘전쟁과 평화’ 류의 대하소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