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쿠스코? 쿠스코!>라마는 월트디즈니사의 분신?

  • 입력 2000년 12월 29일 19시 13분


월트디즈니의 새 영화 <쿠스코? 쿠스코!>는 자기 한탄조의 영화다. 전세계에 거대한 '디즈니랜드' 건설을 꿈꿨으나 드림웍스와 영국 아드만 스튜디오의 재기발랄함에 '기죽은' 월트디즈니사가 과거의 영화로움을 회상하며 읊어대는 서글픈 한탄이랄까.

영화의 시작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라마의 독백이다(라마는 월트디즈니사의 분신?). 그는 현재 자신의 모양새가 엉망진창이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분명 중남미 어느 제국의 황제였노라고 떠들어댄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일단 그렇다고 하니 믿어주자. 라마 역시 웬만한 사람들은 이 말을 믿지 않을 것임을 뻔히 알고 있다. 애니메이션 왕좌 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월트디즈니는, 그래서 바로 이 순간 비디오 리와인드 기법을 동원한다.

말로 하면 못 믿을 게 뻔하지만 눈으로 한 번 보면 내 말을 믿지 않곤 못 배길걸, 하며 증거품을 들이미는 듯하다. 리모콘을 꾹 누른 화면은 재빨리 몇 십 년을 훌쩍 뛰어넘는다. 거기엔 어린 시절 모든 걸 다 가졌던 '찡찡이' 어린 황제가 있다.

"아이쿠, 너무 많이 돌렸네. 이렇게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없지. 다시 화면을 현재와 가장 가까운 시점으로 돌려보겠습니다!"

라마의 내레이션은 굳이 미키 마우스 운운하며 고릿적 추억을 늘어놓고 싶지 않다는 '애니메이션 왕국' 월트디즈니사의 마지막 자존심처럼 느껴져 재미있다.

라마가 되기 전 그는 분명 으리으리한 제국의 황제였다. 그는 모든 걸 다 가졌음으로 하지 못할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먹고 싶은 모든 걸 먹었고 듣고 싶은 모든 걸 들었다. 자기에게 복종하지 않는 신하는 하루아침에 잘라버리는 극악무도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월트디즈니사가 '월트표' 애니메이션의 일등 공신인 제프리 카젠버그를 하루아침에 내쳤듯이.

톰 존스의 음악에 맞춰 탭댄스를 추는 황제는 어느 모로 보나 행복해 보인다. 게다가 그는 마을을 갈아엎고 그 위에 수영장을 겸비한 황제 전용 놀이동산을 건설할 꿈에 부풀어있다.

그러나 문제는 하루아침에 목이 잘린 보좌관이 황제에게 앙심을 품었다는 데 있다. 마녀 보좌관 아즈마는 황제를 독살시키고 자신이 황제 자리에 앉겠다는 야무진 '복수혈전'을 계획한다. 하지만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아즈마의 멍청한 하인이 독약 대신 '라마 변신 약'을 황제에게 먹여버렸기 때문이다. 아즈마의 하인은 인정이 콩알만큼이나마 남아있어서, 라마로 변한 황제를 죽일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살려준다.

절망에 빠진 라마 황제를 도와주는 건 아이러니컬하게도 "마을을 갈아엎겠다"는 황제의 협박을 받았던 농부 파차. 그는 아즈마 일당에게서 라마를 보호하고 그가 다시 인간의 형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시 황제로 돌아온 그는 예전처럼 괴팍하지도, 젠체하지도 않는 착한 인간이다.

애니메이션 왕국 월트디즈니사는 이 영화를 통해 "앞으로는 정말 착하게 살겠다"고, "더이상 내가 제일이라는 환상에 빠져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듯하다.

하지만 영화밖에서 이 영화는 결국 또 포악한 사건을 저지르고 말았다. <쿠스코? 쿠스코!>의 음악을 담당한 '스팅'은 현재 월트디즈니사에게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서사 뮤지컬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어달라고 해놓곤, 갑자기 이 영화를 가벼운 코믹 애니메이션으로 둔갑시켰기 때문이다. 스팅이 만들어놓은 6곡의 음악 중 3곡은 아쉽게도 창고에 처박힐 운명.

이에 발끈한 스팅은 음악 삭제를 통보한 디즈니 관계자와의 전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 <심문실>을 제작해 곧 발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니, 영화보다 영화바깥에서 벌어진 사건이 더 재미있다.

<쿠스코? 쿠스코!>의 황제 쿠스코 목소리는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출신의 코미디언 데이비드 스페이드가 맡았으며, 황제를 도와주는 농부 파차의 목소리는 코엔 형제의 페르소나 존 굿맨이 맡아 열연했다.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 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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