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홀 지음 임창호 옮김
576쪽 2만8000원 한울
영국의 건축학자이자 도시계획학자인 저자가 쓴 이 책에는 정작 미래의 도시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서구의 도시에 관한 지난 100년 동안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이 책이 시작으로 삼고 있는 19세기말은 산업혁명과 함께 인류의 모듬살이에 대변혁이 일어난 시기였다. 급격한 도시화로 그 때까지의 모듬살이 방식으로는 대응할 수 없었던 엄청난 문제들이 나타났고, 이에 대응해 수많은 혁신적인 생각들이 출현했다.
그 후 이상도시를 꿈꾸었거나 그것을 실현하고자 했던 수많은 사상가, 계획가 그리고 개발자들이 나오면서 우리의 모듬살이 양태에 영향을 주었다. 이 책은 이러한 위대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되살아나면서 현실에 영향을 주어온 궤적을 시간과 공간의 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흥미진진하게 추적하고 있다.
1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19세기말 영국의 도시에 관한 러스킨의 암울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당시 런던의 슬럼에 관한 보고를 통해 20세기 도시계획의 기원이 여기에 연원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그 대안으로 제시된 해결책들을 다루고 있다.
교외 개발(3장), 전원도시(4장), 도시문제를 보다 광역적 체계적으로 접근하려는 지역도시(5장), 기념비적 도시(6장), 고층건물의 도시(7장) 등이 그것이다. 자동차 보급 확대에 따른 교외화와 거대도시화 문제(9장), 계획이론과 민간 개발의 역할 증대(10, 11장), 도시빈곤층 문제(12장), 정보화의 다양한 측면과 21세기 도시에의 함의(13장) 등도 논의하고 있다.
에베너저 하워드의 ‘내일의 전원도시(Garden Cities of Tomorrow)’가 출간되던 한 세기 전과 오늘날의 상황은 무엇이 다른가? 지속가능한 도시적 모듬살이에 대한 낙관론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지금 지난 100년 동안의 경험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것이 아마도 저자가 제기했던 의문이었을 것이고 이 책은 그에 대한 충분한 대답을 제공해 주고 있다.
저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마르크스적 설명 방식에 대해 부정하지는 않지만 자유로운 상상력에 바탕한 창조적 힘에 대해 보다 큰 신뢰를 두고 이 책을 기술하고 있다.
저자의 이런 관점과 방대한 지식, 그리고 다양한 경험 덕분에 이 책은 진정한 ‘내일의 도시’를 구상하고 실현해나가려는 사람들에게 풍부한 상상력과 지혜를 제공해 주고 있다.
또 도시계획을 전공하는 학생 및 전문가들에게 현대 도시계획의 토대를 이루었던 본래의 이념들과 그것이 태동했던 역사적 배경, 그리고 그 변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내용의 방대함은 물론 독특한 표현, 그리고 시공간을 넘나드는 복잡한 구성 때문에 읽기에도 까다로운 편에 속하는 이 책의 번역에 노고를 아끼지 않은 임창호 교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도시의 현실을 되짚어 보는 기회를 갖게 되길 바란다.
온 영 태(경희대 토목건축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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