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신,인간,그리고 과학

  • 입력 2001년 1월 5일 18시 57분


신, 인간 그리고 과학

한스 페터 뒤르 외 4인 지음

332쪽 1만2000원 시유시

서구 지성사는 어찌보면 ‘신학과 과학의 투쟁사’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로 시작된 양 진영의 헤게모니전은 400여년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일찍이 다윈은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며 양자간의 ‘평화통일’의 불가능함을 선언한 바 있다. 그로부터 서로를 ‘소 닭 보듯’하는 무심한 냉전이 이어졌지만, 간헐적인 국지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세기 초까지 궁지에 몰리는 듯했던 신학 진영이 역설적이게도 과학의 발전 덕에 우주와 생명의 전선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지난 세기초 원자의 근본을 따지는 양자물리학이 유(有)이면서 무(無)인 소립자의 실체와 맞닥뜨린 것, 1960년대 중반 공인된 빅뱅이론이 우주 대폭발 직전의 상태를 설명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 정교한 생명체의 근원이 원시 지구 무기물등의 우연한 조합에서 비롯됐다는 궁색한 변명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신학은 철학 못지 않은 형이상학을 구사하는 자연과학의 균열을 ‘보이지 않는 손’의 증거라고 주장하며 반격의 포문을 열었고, 최근에는 신학쪽에서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창조과학’으로 게릴라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같은 종교와 과학의 대립은 기독교과 합리주의 뿌리가 깊은 서구사회에서는 중요한 쟁점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변변한 이슈가 되지 못했다. 독일의 저명한 양자물리학, 생물학, 신학, 자연철학 분야의 권위자 5명의 라디오 토론 프로그램의 내용을 정리한 이 책은 이에대한 거의 첫 출판물이란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또 방송용 대담이란 대중적 형식 덕분에 어렵지 않게 우주와 생명, 정신에 대한 양 진영의 기본적인 입장차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다.

사실 우주와 생명, 정신의 기원 같은 주제는 과학자와 신학자가 토론을 통해 민주적으로 합일점을 찾을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점잖은 어투로 서로를 존중하는 토론이지만, 책의 행간에는 깊은 심연이 드리워져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독법(讀法)은 무엇이 정답이고 오답인가를 찾는 퀴즈풀이가 아니라, 자연과학과 신학을 뛰어넘는 ‘엄밀한 지식’의 가능성을 찾는 일일 것이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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