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신간]환상적인 색채와 주제가 돋보이는 만화<흑란>

  • 입력 2001년 1월 16일 13시 16분


미국의 세계적인 만화작가 닐 가이먼의 1988년작 <흑란>(BLACK ORCHID)이 교보문고에서 출간됐다.

미국만화가 블론디, 개구쟁이 데니스, 뽀빠이 류의 가볍고 코믹스런 신문연재만화나 스파이더맨, 슈퍼맨, 배트맨 등의 초영웅시리즈만 있다고 생각하는 독자에겐 파격적이라는 느낌을 줄만한 작품이다.

호러물 시리즈인 <샌드맨>으로 만화가 가운데 최초로 세계 환상문학상 단편부문을 수상한 닐 가이먼은 갱스터 만화 <흑란>에서 작화가 데이브 맥킨과 함께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쳐보인다.

마약, 무기밀매, 매춘사업, 비디오와 잡지, 폰 섹스 등에 손을 뻗치고 있는 갱조직단 회의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만화는 주인공인 '난초인간' 흑란이 악의 집단에 잡혀 잔인하게 살해당하면서 미스테리 속으로 빠져든다. 독자의 예상과 달리 범죄 소탕을 위해 싸우던 주인공 흑란을 서두에 죽이는 것이다.

만화는 초인간적인 하나의 종족인 흑란이 인간들이 저지르는 악에 대항해 세상을 구원해 가는 과정을 환상적인 색채와 이야기로 그려나간다.

<샌드맨>에서도 그랬듯이 닐 가이먼은 <흑란>에서도 희망과 공포, 현실 그리고 꿈 등 병립하기 어려운 주제를 뒤섞는다. 흑란이 폭력조직에 맞서 싸우면서 끊임없이 정체성을 고민하고, 위기상황에서 자기 내면과의 초현실적인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인류의 미래상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특히 과거, 현실, 미래를 넘나드는 흑란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환상과 현실세계에서 줄타기를 하게된다.

컷마다 한편의 회화를 보는 듯한 섬세한 드로잉을 구현하는 독특한 연출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미국만화에 대한 시각을 바꿔놓을 만하다. 사실주의적 기법과 몽환적인 표현을 함께 사용하는 <흑란>은 흑과 백은 물론 보라, 초록 등의 색채로 신비스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그것은 영국의 버크셔 예술 디자인 대학에서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영화를 전공한 데이브 맥킨의 솜씨 덕분이다. 그는 닐 가이먼과 함께 <흑란> 이외에도 <폭력 사건들>(1987)을 발표했으며 만화뿐 아니라 미디어, 페인팅, 디지털 이미지, 광고 등에서도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오현주<동아닷컴 기자>vividr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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