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자 세상]잠자는 '敬老'

  • 입력 2001년 1월 21일 16시 38분


“또 입씨름이 시작됐군.”

지하철을 타고 출근길에 오른 김모씨(38) 부부는 경로석 앞에서 60대 남성이 20대 초반의 여성에게 점잖게 호통을 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젊은이. 이 곳은 어린 사람들이 잠자는 자리가 아니여. 노인들이 있으면 벌떡 일어서야지.”

“왜요. 피곤해서 잠들면 못 볼 수도 있는….”

20대 여성은 다소 당혹스러운 듯 말끝을 제대로 맺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앉아있었다. 60대의 훈계조 얘기는 계속됐다.

경로석 앞에 서 있던 다른 노인이 가세했다.

“‘왜요’라니. 어른이 얘기하면 무슨 뜻인지 잘 새겨들어야 할 것 아닌가.”

잠자코 듣고 있던 김씨 부부는 “차라리 경로석을 없애든지 해야지. 매일 이런 일이 벌어지니…”라고 작게 말했다.

이 때 맞은편 경로석에서 중국어로 대화하던 한 중국인이 벌떡 일어나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경로석에는 ‘노약자 장애인을 위해서 자리를 비워둡시다’라고 써 있다.

<박희제기자>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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