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진영/김정일, '北의 덩샤오핑' 될까

  • 입력 2001년 1월 25일 18시 27분


북한이 변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적극적으로 대외관계 개선에 나서는 한편 내부적으로도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와의 단절은 힘들 듯▼

북한은 신년사에서 ‘21세기에 상응한 국가경제력을 다져 나가는 것보다 더 중대한 과업’이 없다고 선언했고, ‘기존관념에 사로잡혀 지난 시기의 낡고 뒤떨어진 것을 붙들고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대담하게 없애버릴 것은 없애버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른바 ‘신사고’ 어록을 발표, 개혁과 변화를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를 추진할 것임을 예고했다.

북한의 이런 변화는 김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통해 재확인됐다. 중국의 대표적인 개혁개방 도시 상하이(上海)를 집중 시찰한 김위원장은 상하이는 ‘천지개벽’됐다고 극찬하면서 중국의 개혁개방노선이 옳았다고 높이 평가함으로써 북한이 이른바 중국식 개혁개방노선을 추구할 것이란 추측을 낳았다. 그렇다면 중국식 개혁개방이란 무엇이며, 과연 김위원장은 북한의 덩샤오핑(鄧小平)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흔히 중국식 개혁개방의 특징으로 정치개혁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면서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적극 수용해 경제발전을 실현함으로써 소련과는 달리 공산당 지배체제 유지에 성공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되고 있는 사실은 정치적 체제 변혁은 없었지만, 기존 이념과 지배 엘리트의 대폭적인 교체가 대담한 경제개혁의 전제조건이었다는 사실이다. 공산당 지배원칙을 견지하면서도 마오쩌둥(毛澤東)과 좌파 이념이 철저하게 비판됐고, 이른 바 테크노크라트라고 할 수 있는 신진 관료세력이 대거 등장해 개혁개방의 주도세력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중국식 발전전략에서 주목되는 점은 단계적이고 실용적인 접근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개혁을 추진하면서 처음부터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핵심부분을 공략한 것이 아니라, 인민대중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분야, 농촌경제와 도시지역의 개체경제 활성화를 통해 개혁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확보했고, 한편으로는 미국 일본, 그리고 화교 자본과 기술을 유치해 수출경제를 발전시킴으로써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구조개혁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식 개혁개방은 점(點)에서 선(線), 그리고 면(面)으로 점차 확대되는 단계적 과정이고, 그것은 끊임없는 갈등과 위험에 노출된 과정이기도 했다. 개혁의 단계와 고비마다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려는 보수파와 과감한 체제변혁을 요구하는 급진적 개혁파들의 날카로운 대립과 갈등이 지속됐고, 마침내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 같은 체제위기로까지 심화되기도 했다. 이런 갈등과 위기에도 불구하고 덩샤오핑은 균형과 타협의 실용주의적 리더십으로 정치적 안정과 지속적 개혁개방을 추진했다.

이런 중국의 경험이 북한에 적용될 수 있는가. 과연 북한에서도 김일성 사상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신진 개혁세력이 등장해 인민들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대담한 경제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가. 물론 북한은 중국식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기보다는 북한식 개혁개방을 추진하려 할 것이다. 그것은 과거와의 단절보다는 연속성을 강조하고, 농촌경제개혁으로부터 시작된 중국식 방식보다는 첨단기술 및 수출산업 분야에서 개혁개방의 돌파구를 찾으려 할지도 모른다. 북한에서 협동농장 해체는 중국에서보다 더 심각한 체제 위기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외자도입 등 난제 수두룩▼

따라서 북한의 발전전략이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외자도입을 통해 국가 주도의 첨단산업과 수출산업분야 발전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면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미국 일본 등 서방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북한이 안고 있는 문제는 중국처럼 거대한 내수시장에 대한 매력도 없고, 전략적 가치도 별로 크지 않은 조건에서 외국자본 유치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남한경제의 전망이 불투명한데다 새로 등장한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 조건으로 여러 가지 정치 군사적 양보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북한식 개혁개방의 장래를 낙관할 수는 없다고 하겠다.

서진영(고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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