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수쥬>,중국판 퐁네프의 연인들

  • 입력 2001년 1월 25일 19시 41분


첸카이거(陳凱歌)나 장이머우(張藝謨) 등 중국의 5세대 감독이 그려낸 중국은 회고적이거나 신화적 공간이었다. 문화대혁명의 홍역을 앓은 그들은 중국의 현실 문제를 이야기할 때 슬그머니 비켜서거나 상징적인 수법으로 표현하곤 했다. 어쩌면 그런 의식적인 노력 때문에 이들 특유의 화려함과 비장함이 넘치는 영상이 태어났는지 모른다.

텐안문(天安門)사태이후 등장한 6세대 감독은 이런 선배들과 달리 있는 투박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한다. 그래서 그들 영화는 대부분 처음부터 중국내 상영을 포기하고 서구자본을 끌어들여 제작된 독립영화, 그들 말로 지하전영(地下電影)의 형태를 띤다.

상하이(上海)를 가로지르는 강, 쑤저우하(蘇州河)를 배경으로 한 로우예(婁燁·36)감독의 <수쥬>(쑤저우하의 영어식 발음)는 그런 지하전영의 하나다.

손 카메라로 찍은 영상은 거칠게 흔들리지만 그 속에 담긴 현대 중국 젊은이들의 삶에는 흔들림없는 진실이 담겨있다.

쑤저우하의 풍경을 즐겨 찍는 비디오 촬영기사 ‘나’는 술집의 수족관에서 금발의 인어분장으로 헤엄치는 메메이(조우 쉰·周迅)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오토바이 택배배달원 마르다(지아홍셩·賈宏聲)가 나타나 메메이가 자신의 옛 사랑 무단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들의 관계는 얽힌다.

무단은 몇 년전 사랑했던 마르다의 배신에 인어가 돼 돌아오겠다며 쑤저우하에 몸을 던진뒤 실종된 소녀다. 메메이는 점차 마르다의 절절한 사랑고백에 빠져들고 ‘나’는 혼란에 사로잡힌다. 과연 메메이와 무단은 동일인일까.

영화는 카메라 뒤에 얼굴을 감춘 감독의 분신, ‘나’의 1인칭 독백과 마르다와 무단 사이의 대화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면서 미스터리같은 두 개의 현실을 추적한다.

하나는 도시의 온갖 오물이 가득한 폐수처럼 더렵혀진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어 전설처럼 아름다운 사랑이다. 하지만 그 둘은 모두 쑤저우하에서 발원해 쑤우저하에서 합류한다는 점에서 결국 하나다.강물을 무대로 펼쳐진 러브스토리라는 점에서 레오 카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에 비견할만한 이 영화는 타임지(아시아판)가 선정한 2000년 10대 영화에 뽑히기도 했다. 12세이상. 3일 개봉.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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