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강남권을 보자. 필자의 관찰과 여고생, 재수생, 대학 초년생을 대상으로 취재한 내용을 분석했다.
‘압구정파’는 세미 정장과 리얼힙합 위주다. 롱스커트가 유행인데 드라마 ‘가을동화’ 은서 패션의 영향이 크다. 송혜교가 강남 출신인 데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풍긴 탓이다. 버벌리손가방이 기본이지만 사치성은 피한다. 정통 힙합 패션을 벤치마킹한 ‘리얼힙합’의 인기는 유학파의 강세 탓이다. 업타운, 드렁큰 타이거, C B MASS 등 힙합 가수가 인기다.
‘청담동파.’ 젊은층도 단정한 명품 정장을 선호한다. 프라다나 루이뷔통핸드백와 페라가모구두, 금색 반투명 구치스타킹, 샤넬파시미나, 에트로헤어밴드는 기본 소품. 염색을 안한 생머리나 검은색 코팅머리가 많고 화려한 색조 화장이 드물어 어른과 비슷한 분위기다. 원하는 옷을 사주는 엄마의 말을 잘 듣는 탓에 ‘신보수파’로 통한다.
‘대치동파’는 단정한 모범생 형. 일명 ‘학원파’로 더플코트와 폴로 면바지, 닥터마틴 구두에 뒤가 볼록한 루카스가방을 멘다. 엄마를 따라 백화점에 가서 사긴 하지만 가짜 상표는 경멸한다. 아가타펜던트나 목걸이를 한다. 대치동 출신인 ‘클릭 비’와 은광여고 출신의 이진이 있는 ‘핑클’의 인기가 꾸준하다.
‘올림픽파’는 송파구 올림픽아파트 중심이지만 인근 아시아선수촌 아파트나 문정동 훼미리아파트 패션의 총칭이기도 하다. 남녀 모두 흰색 면티셔츠를 받쳐 입고 폴로니트에 폴로야구모자를 좋아한다. ‘Havard’나 ‘UCLA’ 등 미국 대학 이름이 새겨진 라운드 티셔츠도 즐겨 입는다. ‘H.O.T.’나 ‘보아’에 집착하기도 한다.
‘강남역파’는 밤에 빛을 발한다. 지역 특성상 나이를 속이고 유흥업소에 가려는 10대가 많아 나이 들어 보이는 정장을 선호한다. ‘백댄서풍 힙합’이 유행인데 강북에서 온 원정파가 많은 탓도 있다. 댄스뮤직이면 다 좋아한다.
‘신천파’는 강동과 강남권의 마이너리티 격이다. 앞이 뾰족하고 폭이 좁으며 길쭉한 도로시구두를 좋아하고 머릿결을 늘어뜨리는 매직파마를 하거나 무스로 머리를 넘긴다. 가방은 등에 바짝 붙여 높이 멘다. MCM가방에 벙거지 모자 같은 ‘헌팅캡’을 즐겨 쓴다. ‘강남역파’와 ‘신천파’는 ‘범강북권’으로도 분류된다.
패션의 지방자치 시대. 패션 로컬리즘은 일단 ‘문명의 공존’ 양상이지만 타지역 패션을 ‘복고’ 또는 ‘양키’로 부르며 우습게 보거나 배척하는 등 ‘문명의 충돌’로 나타나기도 한다. 의류업계는 해당 지역 인기 연예인을 파악해 디자인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학부모의 ‘교육적 관심’도 우리 아이는 어느 유형일까에 맞춰진다.
어른의 세계에서는 ‘설 민심’을 두고 아직도 말이 많다. 선거로 뽑힌 ‘동산(動産) 꿔주기’를 놓고도 영호남은 물론, 동네별로도 ‘말도 안돼’ ‘그럴 수도’로 의견이 판이하다. 대학입시제도를 놓고도 계층간 해석이 다르다.
최근 다보스포럼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논하고 있을 때 각양각색의 NGO들은 전혀 다른 목소리를 냈다. 좁은 강남권도 핵 분열하는 마당에 세계의 이해관계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홍호표(부국장대우 이슈부장)hp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