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매거진]인도인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 입력 2001년 2월 2일 19시 31분


지난해 7월 깨달음의 땅, 인도를 방문했다.

몇 해 전에는 부처님의 땅, 성지를 돌아보는 계기로 가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세계의 청년들과 함께하는 워크 캠프(Work camp)에 참가했다.

성지순례 때와는 달리 줄곧 제3세계의 가난과 무지,그리고 개발에 관한 생각이 온통 머리 속을 메웠다.

사실 여행이란 스케줄에 따라 유적지를 둘러보고 촬영하고 이동하기에 바빠 미처 그곳 사람들의 조건에 관심을 두기에는 미흡하기만 하다.

구걸하는 아이들을 단지 동정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동전 몇 닢을 주거나, 귀찮게하는 대상으로만 여기기도 한다.

연세드신 분들은 인도의 생활수준을 보고 어린시절을 회상할 수도 있고, 환경운동하는 사람들은 풍경을 보고 환경적으로 잘 보존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듯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에 따라서 인도는 수행의 천국이라는 생각에서부터 이 지구상에서 가장 형편없이 더러운 나라로 취급되기도 한다.

두번째 인도기행 중 나는 인도의 땅, 기후, 나무, 도로, 건물, 사람들 그리고 생활방식 등 모든 것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경험속에 그들의 '친환경적인 삶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이라는 부분을 열심히 들여다보고자 했다.

환경운동가로서 인도인의 삶의 방식을 들여다봄으로써 조금이나마 내 삶에 대한 반성을 하기위해 철저하게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려 했다.

그건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유하고 쓰는 것에 길들여진 우리의 가치관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부처님께서 6년간 고행하신 부다가야 근처의 둥게스와리 마을이다.

그곳에는 불가촉 천민들이 사는 세개의 마을에 1300여명이 살고 있는데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2명뿐이었다.

거의 100% 문맹인 셈이다. 이들의 1인당 국민소득은 50달러 정도로 우리의 소비수준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

하지만 중국의 12억 인구와 인도의 10억 인구, 만약 이들이 모두 한국의 소비수준처럼 산다면 그것은 지구환경 차원에서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결국 중국과 인도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현재와 같은 삶의 방식으로 생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들의 가난한 삶은 말그대로 자연친화적 삶이었다. 대부분의 집들은 흙으로 지어져 있고 지붕은 우리나라의 초가지붕과 비슷한 데 억새같은 것으로 올려져 있다.

멀리서보면 우아한 기와의 모양인데 자세히보면 흙으로 초벌구이를 한 원통기와들이 올려져 있는 집들도 종종 있었다.

우기에는 날씨가 무더워 대부분 나무그늘 아래서 생활한다. 침상은 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나무껍질 등을 비벼서 만든 새끼줄 모양의 정교한 줄을 엮어 침상바닥을 만들어 사용한다.

집내부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처럼 보일러시설이 잘되고 비닐장판이 깔려있는 것이 아니다. 벽지를 예쁘게 바른 것도 아니다.

집집마다 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나오는 수도시설이 잘되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천민마을 대부분의 집은 모양이 비슷하게 지어져 있다.

집으로 들어서는 대문도, 방으로 들어가는 출입문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방바닥은 흙바닥 그대로다.

흙바닥에 천을 깔고 자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맨바닥에서 잔다. 대부분은 같은 지붕아래 사람이 지내는 방옆에 똑같은 규모와 시설(?)로 가축우리가 붙어있다.

사실 가축우리와 사람이 자는 방이 뚜렷이 구별되지 않았다. 닭같은 조그마한 가축들은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

아침이면 들판에 나가서 먹이를 구하고 해거름에는 집에 찾아 들어온다. 부처님이 고행을 하던 당시에도 이렇게 지내지 않았나 싶다.

이들은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천에 싸서 갖다 버리는 시타림이었다고 하니, 인간이하의 취급을 당하며 불가촉 천민으로 몇천년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온 그들의 문화를 탓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들이 환경의 자정능력을 무시한 채 배출한 오염물들과 달리 여기 있는 모든 것들은 무너져내리면 아무런 환경적 부담없이 그래도 대자연으로 돌아갈 것들이다.

환경운동가로서 그들을 대하며 느끼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인도의 집구조가 대부분 흙으로 되어있다 보니, 우기에 폭우가 내리면 지붕이 무너지고 힘없이 벽이 무너져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세계의 청년들이 국제 워크캠프에 참가해서 하는 일은 이 무너진 집을 복구하고 집을 새로이 튼튼하게 지어주는 일이었다.

보름간의 일정으로 미국, 일본, 방글라데시, 한국 그리고 인도에서도 여러 지역의 청년들이 참가했다.

무너진 집들을 모두 수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할머니 혼자서 사는 집, 노동력이 전혀 없는 집, 경제적으로 가난한 집 등을 우선 선정해 집을 지어주기로 했다.

200여명의 청년들이 2주일간 40여채의 집을 완성했다. 우리나라 규모의 건축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집을 짓는 것은 아주 단순했다. 단순했지만 기후와 물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나라를 비롯한 외국의 참가자들에게는 4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 그 자체가 고행이었다.

쇠파이프 기둥을 세우고 양철지붕을 올리고 고정한 후 사방벽에는 초벌구이한 붉은 벽돌을 쌓아올리면 된다.

집을 지으면서 또다시 빈곤과 개발, 그리고 환경의 조화라는 화두가 떠올랐다. 2천년을 넘게 도시문명의 도움없이 살아온 그들에게 쇠파이프와 양철지붕으로 지어진 화려한 집을 선물해야 하는걸까?

워크캠프니 성지순례란 이름으로 외국의 관광객들이 호사스런 모습으로 다가와 그들에게 말한다.

"신발이 없어 불쌍하다" "옷이 없어 불쌍하다" "학교가 없어 아이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니 불쌍하다" "집이 깨끗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 불쌍하다" 등등.

자연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불가촉 천민들의 삶을 야만이라고 하는 것은 문명인의 적반하장격 사고방식이 아닐까?

20%밖에 안되는 선진국의 인구가 전세계 자원의 82%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잘사는 나라가 가난한 나라 사람이 써야할 자원을 끌어당겨 소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볼때 잘사는 나라는 두가지 죄업을 짓고 있다.

하나는 가난한 나라의 것을 빼앗아 쓰고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들의 가난의 덕으로 생존하고 있는데도 자신의 물질적 풍요를 그들에게 돌려주려 하지않고 오히려 더욱 수탈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진국들이 환경문제가 정말 심각하다고 느낀다면 하루라도 빨리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의 소비를 줄이고 제3세계의 환경친화적 개발을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제1세계와 제3세계의 형평성을 생각하는 첫번째 방법이다.

아직도 내 뇌리속에는 빈곤과 개발의 문제가 맴돌고 있다.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구걸하는 아이들과 어려서부터 제대로 먹지 못해 불구가 되어버린 사람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행복한 얼굴이다.

언젠가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세계최고 빈곤국가가 방글라데시인데 반해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곳 역시 방글라데시라고 한다.

그렇다. 행복지수는 개발과 성장의 지수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인도를 생각하면 개발이 천민마을의 웃음가득한 아이들의 얼굴에 수심과 분노를 서서히 심어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도 하고 그들의 조화로운 삶이 파괴되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박석동/한국불교환경교육원 기획부장 ecodong@jts.or.kr

(이 글은 환경정의시민연대의 '우리와 다음' 2001년 1·2월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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