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僻怪祭(벽괴제)

  • 입력 2001년 2월 6일 18시 46분


지난번에 ‘天意’를 설명하면서 하늘과 인간간의 關係를 언급하였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하늘의 複製品(복제품)으로 모든 것을 하늘의 뜻(天意)에 따라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일차로 警告(경고)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災殃(재앙)을 내린다고 여겼다.

그런데 하늘은 代理人을 내세워 下界의 人間을 다스리는 간접통치방식을 취했는데 그 ‘代理人’이 바로 天子, 곧 ‘하늘의 아들’ 아닌가? 그러니 天子를 考課(고과)하고 컨트롤하는 것은 하늘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잘하면 칭찬을, 못하면 야단을 치는데 아주 못된 天子의 경우에는 지금말로 하면 天災地變(천재지변)을 ‘사인’으로 보낸다고 여겼다. 더 심한 경우, 아예 갈아치우기까지 했는데 이른 바 ‘革命’이 그것이다.

자연히 중국이나 한국을 막론하고 하늘은 百姓에게 뿐만 아니라 天子에게도 ‘絶對的’인 존재로 ‘天臨’(천림)하였다. 歷代의 帝王들이 얼마나 하늘을 두려워했는지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수천년 역사상 天災地變 앞에서 초연했던 帝王은 아무도 없었다. 특히 가뭄이라도 들면 帝王은 몸 둘 바를 몰랐다.

우리나라의 예를 보자. 조선 太宗은 가뭄이 들자 削髮(삭발)까지 하겠다는 悲壯한 心情으로 大聲痛哭(대성통곡)하는 바람에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되어 말을 하지 못할 정도’였으며 世宗大王은 근심걱정으로 무려 10일간이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앉아서 밤을 지새는 등 戰戰兢兢(전전긍긍)하였다. 憂民精神(우민정신)의 發露(발로)이기도 하겠지만 天意는 그만큼 무서웠던 것이다.

하지만 地震(지진)이나 月蝕(월식), 벼락 등과 같은 경우는 상대적으로 두려움이 덜하였다. 가뭄이나 홍수처럼 농작물에 직접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데다 달이 변고를 일으키는 月蝕의 경우, 帝王의 德과는 거리가 있다고 여겼던 탓이다. 그러나 역시 ‘異變’에 속했던 만큼 帝王은 근신하며 災殃을 물리치려고 노력했는데 이른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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