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몽마르트 환락가의 스타들을 파격적인 구도와 문자도안으로 그려낸 포스터 ‘물랭 루즈’를 비롯해, 달리는 말의 역동성과 사창가 여인들의 일상적 순간을 잡아낸 화려한 판화와 그림들, 그리고 무질서한 삶 속에서 무한한 아늑함의 시간을 건져낸 단색의 석판화 ‘권태’까지.
작품 옆의 제목을 보면 그 바로 아래 선명하게 적힌 소장자의
이름들이 시선을 잡는다. 산토리미술관, 도야마(富山)현립근대미술관, 요코하마(橫浜)미술관…. 19세기말 파리의 단면을 생생하게 그려낸 이 프랑스 화가의 전시작품 120여 점 중 약 3분의 2가 일본인의 소장품이다.
다리가 불편했던 로트렉은 단 한 번도 일본에 와 본 적이 없지만 1850년대부터 프랑스에 알려진 일본 판화 우키요에(浮世繪)의 영향을 받았다. 원근법을 무시한 주관적 공간 구성, 원색을 이용한 단순 명쾌한 색채 배열, 생활에 밀착한 일상적 소재. 이런 것들은 로트렉의 개성적이면서도 따뜻한 눈, 잔인할 정도로 사실적이며 생동감 있는 선과 만나 불멸의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인연이 있다해도 일본인들이 그의 작품을 잔뜩 사들여 자기 문화인 양 품고 있는 데는 외래 문화를 끊임없이 동경하면서 이를 통해 현실의 부정적인 면을 미화, 극복하려는 일본적 사고가 반영돼 있다.
이는 냉혹할 정도로 현실을 비판하며 유교의 도덕적 이상을 그대로 이 땅에서 실현하려 했던 조선의 유학과 다른 전통이다.
유교의 도덕적 이상주의는 일본에 수입돼 일본사상을 풍요롭게도 했지만, 현실의 불완전한 삶을 적극적으로 긍정 미화하려는 일본 국학파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일본인들은 현실의 불완전함을 비판하기보다는 불완전한 현실을 정당화하기 위해 외래의 것을 수입할 뿐 아니라, 전통 속에서도 필요한 것을 끄집어 내 끊임없이 포장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와 국가주의를 결합해 일본 파시즘을 만들어 낸 기타 잇키(北一輝)나 개화기를 이끈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같은 근대사상가들은 서양의 문화에 압도된 근대 이후에도 일본사상사에서 끊임없이 재평가되며 그 후예들을 재생산해 내고 있다.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개화사상가 김옥균은 일본으로 피신하고, 변증법적 유물론과 민족해방운동을 결합해 실천철학을 주장했던 신남철은 북한으로 넘어가야 했던 우리의 역사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이들은 폐쇄적 비판 아래 한국 근대사상사의 패배자로 끊임없이 폄하돼왔다.
이런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천황과 결합한 군국주의와 2차대전의 만행도 미화하고 역사 왜곡까지도 서슴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로트렉마저도 통째로 삼켜버리려 할 만큼 왕성한 소화력을 갖고 있다.
김옥균과 신남철이 역사의 단절을 겪고 있는 사이, 일본의 거리에서는 로트렉만이 아니라 물랭 루즈도 발견될 수 있다.
<도쿄에서>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