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흐름 꿰뚫는 지도자 필요▼
제1장은 몽골 얘기로부터 시작된다. 불과 50만명밖에 안되는 인구로 아시아는 물론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과 중동까지 정복한 전쟁국가체제를 완성한 칭기즈 칸의 몽골제국은 손자 쿠빌라이 칸에 이르러 평화국가체제로 전이되는데, 그 과정이 결코 간단치 않았다. 전투에만 익숙해진 군인들이 계속해서 원정과 전쟁을 요구했지만 쿠빌라이는 이제 이 제국에도 평화의 시대가 뿌리내려야 한다고 믿고 그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평화노선에 불만을 품은 일부 부족들이 쿠데타를 음모하자 모르는 척하면서 거병하도록 유도해 반란자들을 한꺼번에 제거하는 마키아벨리적 수법도 썼다. 최고권력자의 역사인식과 결심, 그리고 자신의 지지세력을 설득하거나 제압할 수 있는 능력 등이 전환의 비결이었던 것이다.
제2장은 2차대전 종전 직후의 영국과 프랑스이다. 영국의 지도층은 이제 제국주의 시대는 끝났다고 보고 국민의 이해를 바탕으로 수많은 식민지의 독립을 돕거나 방관하는 길을 택했다. 그래서 제국주의 시대로부터 식민지해방 시대로의 전이를 비교적 명예롭게 관리할 수 있었다. 반면에 프랑스는 지도층이나 국민 모두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가 명분없는 베트남전쟁과 알제리전쟁을 치러야 했고 마침내 창피스러운 패퇴를 기록해야 했다. 시대의 전이를 아주 잘못 관리한 대표적 사례였다.
제3장은 1975년 프랑코 총통의 사망이후의 스페인, 1983년 알폰신의 대통령 당선 이후의 아르헨티나, 1990년 피노체트의 퇴진 이후의 칠레, 1994년 백인정권의 종식 이후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의 민주주의로의 전이, 그리고 1989년부터 1993년 사이에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전개된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이 등에 대해서이다.
나라마다 차이가 적지 않아 일률적으로 말하긴 쉽지 않다. 그러나
거기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를 선도한 지도자들이 있었는가가 그래서 시대의 흐름에 맞서기보다 오히려 발맞추는 지도자들이 있었는가가 ‘평화적 전이’냐 ‘유혈적 전이’냐를 판가름해주었다. 둘째,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가려는 지도자가 자신의 지지세력 또는 기득권 세력을 납득시키거나 제압할 능력이 있을 때 비로소 저항세력과의 ‘합의적 전이’가 가능했다. 셋째, 저항세력이 자신들의 투쟁 대상인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놓게 되는 경우 보복하지 않을 것임을 보장해주는 도덕적 힘과 현실적 힘을 가진 경우 ‘평화적 전이’가 쉬웠다. 이 세 가지 관점에서 가장 완벽한 성공사례로 흔히 남아공을 꼽는다. 사람들은 백인정권으로부터 흑인정권으로의 평화적 전이를 기적이라고 부른다. 거의 모두가 그 전이는 대규모 유혈사태를 동반할 것이라고 보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북한은 어떻게 될까? 사실 너무나 많은 큰 문제들을 안고 있는 북한이 개방과 개혁의 체제로 ‘평화적 전이’를 이룩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기적을 기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북한의 ‘평화적 전이’가 북한에도, 남한에도, 그리고 주변국가들에도 도움이 되므로 우리는 그것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고 또 그렇게 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지난해 이후의 언동을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전이’를 결심한 것 같고, 기득권 세력을 설득하거나 제압할 능력을 갖춘 것 같다. 이 점이 어떻게 확인될 수 있을까? 그의 서울답방에 따른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시험대가 될 것이다.
▼북의 평화적 전이 적극 도와야▼
남한의 경우는? 우리는 1987년의 6·29선언을 계기로 ‘평화적 전이’의 긴 여정을 걸어 왔건만.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정혼란과 국민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의 일련의 사태는 우리의 앞날에 대해 믿음을 주기보다는 불안과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왜 이렇게 됐을까? 원인은 결코 한 곳에서 찾을 수 없을 만큼 복합적이지만 지금 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부의 국가경영능력 부족에서 찾게 된다. 국가경영의 비전 제시에 앞서 싸움만 벌여 왔고, 자기만 깨끗한 것처럼 내세우며 남을 단죄한 위선의 정치에 몰두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강력한 지도력’을 내세운다고 해도 영(令)이 서지 않고 믿음을 주지 못한다. 내년이면 대통령선거전에 들어가고 이어 또 한 차례 ‘전이’의 계기를 맞게 된다. 정치공학에 입각하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정치철학에 입각해, 인기영합에 치중하지 말고 설득할 것은 설득하고 제압할 것은 제압하면서 국정에 임하는 여야 지도자들의 모습이 아쉽다.
<본사편집·논설상임고문>hak@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