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대표선수들이 거스 히딩크 감독(55)의 지휘봉 아래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겉보기엔 훈련 내용이 과거보다 훨씬 편해졌다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혹독하기 이를 데 없다. 오만 전지훈련을 거쳐 6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입국한 대표 선수들의 볼은 푹 패었고 일부는 지친 나머지 향수병에 시달릴 정도.
그렇다고 히딩크감독이 고삐를 늦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로봇 축구’를 청산하고 ‘생각하는 축구’를 구축할 때까지는 강행군을 멈출 수 없다는 것.
히딩크감독은 과거 대표팀에서 훈련에 앞서 으레 해오던 구보를 없앴다. 체력훈련이야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고 전체 훈련 때는 공수전환과 패싱, 전술훈련만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 때문에 선수들은 훈련 전후 개인 체력훈련에 매달리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훈련 중에도 기계적으로 나오는 동작엔 반드시 제동이 걸린다. 지적당한 선수는 자신이 왜 그런 동작을 했는지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리기 일쑤다. 선수들은 방향전환이나 패스동작 하나하나에도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만큼 한 시간만 훈련을 해도 녹초가 되고 만다. 이런 훈련을 오전 오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실시해 왔다.
선수들은 히딩크감독의 녹음기가 “고문기로 보인다”고 하소연한다. 미처 지적하지 못한 내용도 히딩크감독이 훈련 중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녹음기에 담아 두는 바람에 잊어버리고 넘어가는 경우가 절대 없다.
프리킥 훈련만 해도 과거와는 달라졌다. 훈련 때는 사람 키 높이의 이동식 수비벽을 준비, 고종수 유상철 이영표 홍명보를 대상으로 다양한 상황에서의 성공 방법을 집중 조련했다. 대충 감으로 차는 것은 용납되질 않았다. 잦은 포지션 변경도 선수들에겐 고역이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테스트한다는 것이지만 히딩크감독이 “고종수처럼 어떤 포지션에서든 전술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밝혔듯 대부분의 선수가 아직 합격점을 못받은 상태라 이래저래 신경이 쓰인다.
아울러 히딩크감독은 웬만한 작전 지시를 영어로 하며 선수들이 영어 공부를 하도록 다그치고 있다. 선수들이 늦은 밤 잠들기 전까지 영어책과 씨름하는 것도 이젠 낯선 광경이 아니다.
유럽에서 온화하기로 소문났던 히딩크감독이 이처럼 가혹할 정도로 선수들을 몰아붙이는 것은 한국축구를 변방의 좁은 울타리에서 끌어내 세계 수준으로 뛰어오르게 하기 위한 것. 단기간에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힘들더라도 스파르타식 극약 처방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일본 축구영웅 나카타 히데토시는 올 초 아사히신문 신년 대담에서 이탈리아 프로축구 1부 리그에서의 생존 비결을 “말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제 태극전사들이 이를 경험하며 절감하고 있다.
<두바이〓배극인기자>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