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노자 석가, 이 세 성인(聖人)이 만나 동양철학의 진수를 이야기한다.’
사실 이것은 별로 신선한 방식이 아니다. 이런 방법이라면 대가들의 사상을 소개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도 여러 차례 시도해왔다.
하지만 저자가 역사상 최고의 한문사전이라는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의 저자인 모로하시 전 도쿄대 교수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게다가 그가 100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나기 직전 일반인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세상에 내놓은 책이라면, 그리고 일본 고단샤(講談社)에서 18년간 33쇄를 발간한 책이라면 다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대체로 일반독자를 위한 철학서나 철학강좌는 본래의 철학에 서술자의 생각이 뒤섞이며 서술자의 이해 수준에 따른 왜곡을 낳을 수 있다.
특히 주석도 달지 않고 비전문가를 상대로 한다는 점을 믿고, 성현의 글 한 두 구절을 중언부언하며 자신의 설익은 생각을 마치 성현의 생각인양 마구 떠들어대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책은 분명히 평이한 서술방식을 취하면서도 대중철학서들이 흔히 범하는 치명적 약점을 범하지 않는다.
집안 내력과 공부 과정부터 음식이나 음악 등의 취향, 그리고 그 심오한 철학의 세밀한 비교까지, 세 성인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대한화사전’을 만들었던 저자의 치밀한 고증과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쉽게 보이면서도 곱씹으며 읽지 않으면 그 맛을 알기 어렵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독자들을 위해 꼼꼼히 주석을 달아 놓은 옮긴이의 정성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민속학자이자 연행(演行)예술가인 심우성 한국민속극연구소장의 매끄러운 번역과 친절한 주석은 모로하시 선생의 ‘경지’를 전달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가끔은 미처 달지 못한 듯한 주석도 있고 오역도 없지는 않지만, 이는 아직까지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개설서 하나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한 한국의 동양철학자들을 위해 할 일을 남겨 둔 옮긴이의 배려인 듯하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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