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근원수필' '조선미술대요'

  • 입력 2001년 2월 9일 18시 42분


◇한국 미술사의 감동

7, 8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경북 봉화에 사시는 전우익 선생님이 김용준의 ‘근원수필’을 읽어보라고 해서, 문고판으로 된 그의 책을 샀지만 몇 편 읽다가 그만 두어 버린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올 겨울 방학 동안 나는 다시 김용준의 수필집 ‘근원수필’과 ‘조선미술대요’(열화당·2000)를 접하게 되었다.

그의 수필은 정월대보름 찰밥처럼 묵직하고 찰졌다. 그 맛은 마치 별 양념 없이 담아 땅에 꼭꼭 묻어 두었다가 봄에 꺼내 먹는 김치의 맛이었다. 우리 어머님은 그런 봄 김치의 맛을 ‘게미’가 있다고 했는데, 그의 글은 읽을수록 글 맛이 그렇게 진득하게 우러났던 것이다.

글을 읽고 있으면 그 속에 담긴 그의 마음이 내 몸과 마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금방 내 살이 되고 따뜻한 내 피가 되어 내 말이 되어주었다.

‘조선미술대요’의 ‘범례’ 여섯 번째에는 이런 글이 있다. ‘이 책은 미술사라기보다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미술품이 왜 아름다우며 어떠한 환경에서 그렇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점을 밝혀보려 애를 썼다.’

이 책은 미술사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기술한 책이지만, 글 쓴 이가 고구려의 벽화 이야기를 할 때면 마치 내 살이 꿈틀거리는 것 같아 힘이 절로 솟아나고, 백제나 신라의 예술품들을 이야기 할 때는 예술품들을 다듬고 있는 그 때 그 사람들의 모습이 내 곁에 있는 것처럼 글쓴이의 감정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의 따듯한 피가 도는 것 같은 이 미술대요는 우리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배웠던 삼국 예술의 특징, 그러니까, 고구려 예술은 대담하며 용맹스럽고, 백제의 예술은 맑고 따뜻하고 단아하며, 신라의 예술은 섬세하고도 화려하며 부드럽다는 해석은 이 책의 내용이었던 것이다.

나는 ‘근원수필’을 읽고 나서 ‘조선미술대요’를 읽었다. 수필을 읽은 뒤 흐뭇하고 즐겁고 괜히 서성거렸던 그 맛이 ‘조선미술대요’를 읽는 마음으로 쉽게 이어졌다.

‘근원수필’과 ‘조선미술대요’가 마치 한 권의 책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 두 권의 책을 읽고 내 머리 맡에 놓아두니, 세상이 든든하고, 흐뭇하고, 행복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글 속에 내 혼을 넣어 키우는 것이라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금방 다 된 떡시루의 김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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