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권(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스탠퍼드대 교환교수)
제퍼리 무어는 스탠퍼드대 수학과에 입학했으나 문학으로 전공을 바꿔 졸업했다. 워싱턴대에서 문학박사를 받은뒤 70년대 중반 미시간의 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를 했다. 그러던 그가 1978년 실리콘밸리로 돌아오면서 인생의 항로를 바꿨다.
랜드시스템사에 교육전문가로 입사한 뒤 자문역으로, 다시 세일즈맨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10년후 하이텍 마케팅전문가가 되더니 1992년 마케팅전문 컨설팅회사 ‘Chasm Group’의 창업자가 되었다. 1997년 비즈니스위크지에 의해 실리콘밸리 차세대 지도자 16인 중 하나로 선정된 그는 지금 모어 대비도 벤처캐피털의 파트너이기도 하다.
실리콘밸리에는 제2, 제3의 ‘제퍼리 무어’가 많다. 프로그래머가 변호사가 되기도 하고, 창업자가 다시 벤처캐피털리스트로 역할을 바꾸는 일이 다반사다. 어떤 창업자는 기업을 경영하다 연구개발 엔지니어가 되기도 하고 교육행정가로 변신해 사회봉사에 나서기도 한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왜 직장과 직종을 서슴없이 바꾸며 이동하는 것일까.
변화속도가 더딘 산업사회에서는 노하우나 지식의 수명이 길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디지털 산업구조는 비즈니스의 원리를 바꾸었다. 정보나 지식의 생성속도가 빨라지고 수많은 아이디어와 기술, 정보, 경영기법, 비즈니스 모델, 사업전략, 인적 네트워크가 활자화될 여유도 없이 공기중에 떠 다니고 있다.
존 브라운과 폴 더기드는 ‘The Silicon Valley Edge’에 기고한 글에서 실리콘밸리의 이러한 분위기를 가리켜 “실리콘밸리의 공기중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했다.
이러한 실리콘밸리의 분위기 속에서 지속적인 학습과 변신없이 남보다 앞설 수 없는 것은 차라리 당연하다.
제퍼리 무어는 그를 유명하게 한 저서 ‘Inside the Tornado’에서 이렇게 외쳤다. “전환이 빠른 하이텍시장에서는 어느 한 국면의 ‘성공전략’이 다음 국면에서는 필히 ‘실패전략’이 된다. 자신이 현재 어느 국면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전략’을 신속히 바꾸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변신을 통한 지속적인 학습’은 이미 거대한 학습조직을 형성하고 있는 이곳 e밸리 생태계에서 성공하기 위한 핵심적인 지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