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코리아로 가는길]＂21세기는 속도의 시대＂…스피드경영

“1980년대는 질(質)의 시대, 90년대는 리엔지니어링의 시대였다. 2000년대는 속도의 시대가 될 것이다.”

빌 게이츠가 저서 ‘생각의 속도’에서 던진 화두 속의 ‘속도’는 그 자신이 의도했건 안했건간에 단순히 물리적 스피드라는 개념으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그것은 외부 환경에 대응하는 기업의 경영의 속도, 총체적인 적응역량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인터넷이라는 전례 없는 폭풍이 몰아치는 지금의 환경에서는 더 더욱 그렇다.

지난달 20일 미국 샌타클래라 인텔(Intel) 본사에서 만난 이 회사 수석 e비즈전략기획가 크리스토퍼 토머스의 얘기도 ‘속도’에 집중됐다.

그는 “지금은 고객의 요구를 ‘가장 빠르게’ 가장 효과적으로 만족시키는 기업만이 성장할 수 있는, 시간 기반의 경쟁(Time―based Competition)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텔내부〓‘인텔 내부(Intel Inside)’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세계 최대 반도체 칩(마이크로프로세서) 업체인 이 회사는 반도체 칩 제조를 ‘넘어서는’ 새로운 변신을 하고 있다.

인터넷이 바꿔놓은 새로운 기업환경은 인텔 전 회장인 앤디 그로브가 예견했던 것(저서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 이상으로 인텔에 ‘전략적 변곡점(Strategic Inflection Point)’이 되고 있다.

이 변곡점에서 인텔이 찾은 해답은 ‘100% e비즈니스 기업’으로의 변신이다.

토머스씨는 “인텔은 이제 컴퓨터 산업에 머물지 않고 인터넷 관련 기술개발과 e비즈 역량 강화로 ‘e기업’으로 전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텔의 e기업화에 있어 솔루션의 핵심은 업그레이드된 ‘전사(全社)적 자원 관리(Enterprise Resource Planning)’시스템 즉, ERP다.

인텔의 e비즈 전략의 중추인 ERP에는 인텔의 전직원은 물론 직접적 고객과 이들을 통한 간접 고객, 직간접 부품 공급업체 등 모든 관계자들이 포함돼 있다.

캘리포니아와 오리건주의 데이터센터는 하나로 통합된 솔루션,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하드웨어를 갖춰놓고 있다. 이를 통해 모든 고객 및 공급자와 100% 전자적으로 의사교환을 한다는 게 목표다.

인텔은 이제까지 이뤄낸 ‘e기업화’의 성과를 몇 가지 지표로 제시했다.

‘60개 나라에 있는 600개의 직접 고객 기업이 700종의 서류를 공유한다. 7만5000여 중간상이 인터넷에 의해 업무지원을 받고 있으며 자재의 80%가 웹을 통해 직접 구매된다.’

‘속도’의 향상은 획기적이다. 보안이 필요한 서류의 전달 시간이 종전 2∼3주에서 30분으로 줄었다. 같은 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주문량은 40%나 늘었다.

인텔의 ERP는 웹 환경에서의 ERP의 가능성과 미래를 잘 보여주고 있다.

과거 ERP를 기업 내부에 정착시키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표준화와 호환의 어려움이었다.즉 외부에서 ERP 패키지를 기업 내부에 있는 기존 시스템들과 연결하기 위해선 코드(Code)를 다시 쓰는 등 기존 시스템과의 융합이 필요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형식의 소프트웨어간의 인터페이스(Interface)에만 노력을 기울이면 된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XML이라는 차세대 인터넷언어 덕분이다. 즉, 여러 시스템간의 커뮤니케이션 언어가 표준화된 것이다.

인터넷 기술이 ERP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데 최대 걸림돌이 되었던 호환성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게 해준 것이다.

인텔의 ERP는 물론 이런 기술적인 측면만으로 이뤄진 건 아니다.

토머스씨는 “중요한 것은 역시 기술적인 것뿐만 아니라 기업 내부의 조직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직원이나 고객들을 새로운 환경에 맞춰 움직이게 하는 인센티브 도입 등 ‘전사적인 변신’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살아남으려면 속도를 높여라〓새너제이의 벤처기업인 에이질사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도 결국 ‘속도’에 관한 솔루션으로 모아진다. 컴퓨터 주문 제작업체인 델(Dell)사가 제품 재고기간을 불과 3∼6일로 단축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업체가 개발한 공급망 솔루션을 적용한 덕분이다.

캐럴 보일 슈레이더 부사장은 “우리는 각 사의 개별적인 공급자 네트워크를 만들고 관리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에이질의 e허브(Hub)에는 제품 디자인 문서에서부터 수주량, 생산량, 공급자측에서의 부품 재고량, 생산량 등 제품 관련 정보들이 모두 축적돼 있다. 이를테면 각 업체들의 생산과정에 필요한 데이터의 ‘창고 겸 저수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를 통해 고객 기업들은 제품개발과 주문 처리의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

높아진 건 고객의 속도뿐만 아니다. 에이질사 역시 실리콘밸리의 전반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최근 3년간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새너제이〓이명재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