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맨>이 그랬던 것처럼 <키드>는 할리우드가 사랑한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중요 모티프를 빌려왔다. 지독한 냉혈한이 자신의 '추한 모습'을 자기 눈으로 확인한 뒤 착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설정. 하지만 <키드>의 주인공이 받은 이 요상한 선물은 <크리스마스 캐럴>의 구두쇠 스크루지가 받은 선물처럼 크리스마스용이 아니다.
이미지 컨설턴트로 일하는 러스 듀리츠(브루스 윌리스) 앞에 어느 날 문득 '유령 같은' 전령사(스펜서 브레슬린)가 나타난다. 그는 다름 아닌 그 자신이다. 현재 그는 40세 생일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지만 그 앞에 당도한 전령사의 나이는 8세에 불과하다. 과거를 들추길 죽기보다 싫어하는 러스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넌 도대체 왜 내 앞에 불쑥 나타난 거니?"
<식스 센스>에서 그 자신이 유령이었던 브루스 윌리스는 진짜 유령 같은 친구와 만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물론 꼬마 러스에게도 털끝만큼의 애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 초반 우리는 이미 러스가 남을 배려해주는 데 '젬병'이라는 사실을 눈치챘으므로, 그의 냉정함은 별로 놀랍지도 않다.
러스는 이미지 개선 상담을 받으러 온 여자에게 "울지 말라"고 윽박지르거나 물품 계산대 앞에서 멈칫거리는 노파에게 "늙었으면 집에나 콕 처박혀 있어"라고 소리질렀던 남자다.
이런 냉혈한이 개과천선하는 덴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자신의 과오를 뉘우칠 만한 큰 사건과 만날 것, 둘째 냉혈한이 된 과정의 뿌리를 캐내 완벽하게 치유할 것.
러스는 어릴 적 자신과 만나는 '큰 사건'을 통해 아버지에게 학대받았던 과거의 아픔을 봉합한다. 8세의 러스를 따라 과거로 회귀했던 러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에겐 더욱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이 모든 사건이 개과천선 후 30여 해를 더 산 미래의 자신이 꾸민 계략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러스가 한 자리에 모여 나누는 대화는 황당하면서도 위트 있다. <키드>는 너무 유아적인 발상 때문에 아동용으로 전락했지만 나이든 어른이 봐도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다. 물론 거창한 재미는 아니고, 콘크리트 바닥처럼 메마른 얼굴이 약간 미동할 만큼 딱 그만큼의 재미다.
이 영화에서 현재와 미래의 러스 듀리츠를 모두 연기한 브루스 윌리스는 <식스 센스>에 이어 '총을 들지 않아도' 멋진 연기를 펼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알려줬다.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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