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만의 폭설후 '아름다운 풍경']눈 치우기 "영차 영차"

  • 입력 2001년 2월 16일 18시 37분


' 엄마와 함께 눈 치워요'
' 엄마와 함께 눈 치워요'
《“3층 사세요? 저는 4층인데…. 인사도 못했네요.” 32년 만의 기록적 폭설이 내린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거여2동 효성동아아파트단지. 눈발이 그치기 시작하자 주부 아이들 100여명이 빗자루 세숫대야 쓰레받기 등 ‘제설장비’를 들고 모여들었다》

‘눈을 치우자’는 안내방송이 나가자마자 몰려든 주민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인근 도로 비탈길까지 깨끗하게 눈을 치웠다.

저녁에는 일찍 퇴근한 가장들도 합세해 밤늦게까지 제설작업이 이뤄졌으며 인근 식당과 포장마차에는 이웃들끼리 모처럼 소주잔이 오갔다.

주민 김순희씨(52)는 “올들어 폭설이 여러번 내렸지만 눈 치우는 일은 으레 경비원 아저씨들의 일로만 생각했었다”며 “서로 남의 집 자동차에 쌓인 눈까지 쓸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이웃간 정을 새삼 확인해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유난히 눈이 많은 올해, 그동안 내 집앞 눈치우기에 인색했던 주민들이 15일만큼은 예외였다. 아파트 주택가 이면도로 골목길 할 것 없이 자발적인 눈 치우기에 앞장선 것.

자발적으로 눈치우기에 나선 시민들에게 이날의 눈은 ‘불편했지만 기분 좋았던 폭설’이었다.

그러나 남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로변에 차를 세워놓고 가버리는 등 ‘옥에 티’도 없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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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식 사례들〓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3동 동사무소 김영채(金榮彩·37)총무는 “그동안은 눈만 내리면 왜 빨리 치우지 않느냐는 항의전화가 빗발쳤는데 15일에는 전혀 없었다”며 “아파트는 물론 단독주택가 주민들도 자발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치우는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고 전했다.

고지대가 많은 서울 구로구 구로3동 주민 배병오(裵炳五·49)씨는 “언덕과 좁은 골목길에 폭설 때마다 쌓인 눈이 그대로 있어 한두달을 빙판길로 고생했다”며 “이번에는 자기 집앞은 물론 노인이나 맞벌이 부부들 집앞을 쓸어주는 주민도 많았다”고 전했다.

16일 새벽 서울 광화문 일대 제설작업에 참여했다는 서울 중구청 노경희(盧京熙) 도로 관리계장도 “이미 주변상가 상인들이 자기 가게 주위뿐만 아니라 인도 전체를 깨끗이 치워놓아 놀랐다”며 “지금까지 우리나라 시민의식에 대해 회의를 가졌었는데 이번 폭설을 계기로 생각을 바꿨다”고 말했다.

서울 체류 3년째라는 미국인 다이애나 하인즈(26·서울대 국제지역원)는 “미국에는 눈이 오면 자기 힘 닿는 데까지 집앞, 인도 이웃집 눈까지 함께 치우는 것이 일반적인데 한국인들은 그렇지 않아 지나친 개인주의라고 생각했었다”며 “그런데 15일 너도나도 집앞 눈을 함께 치우는 이웃들을 보며 한국인에 대한 실망이 사라졌다”고 활짝 웃었다.

▽‘옥에 티’들〓그러나 이날 남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은 사례들도 간혹 눈에 띄어 아쉬움을 남겼다. 15일 오후 도로가 빙판이 되면서 주행이 곤란해지자 도심 대로변에 차를 세워놓고 가는 운전자들이 속출, 도로 곳곳이 주차장화되면서 제설작업에 나선 공무원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폭설로 운행이 불편하자 대로변에 차를 세워놓고 가버린 운전자들의 차가 도심 곳곳에서 발견됐다”며 “원래는 불법주차로 단속대상이지만 재해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단속하기는 곤란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폭설 피해 376억원▼

한편 중앙재해대책본부는 이번 폭설로 비닐하우스 743ha와 축사 300개소, 인삼재배시설 4ha 등이 파손되고 가축 6000여마리가 죽었으며 경기지역 3개 공장의 창고지붕이 무너졌다고 밝혔다. 대책본부는 17일 0시 현재 집계된 피해액은 376억여원이라고 밝혔다.

<사회부·이슈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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