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맹(流氓)이란 중국어를 우리말로 옮기기엔 그 함의가 너무 깊고 광범하다. 그래서 역자는 어쩔 수 없이 원서명대로 우리말 한자음인 ‘중국유맹사’로 번역본의 제목을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을 보충하기 위해 역자는 ‘중국건달의 사회사, 건달에서 황제까지’라는 부제를 달아 이해를 돕고 있다. 건달이라는 말도 ‘유맹’의 뜻에 비교적 가깝긴 하지만 지극히 한 부분에 해당하는 뜻일 뿐이다.
저자는 선진 양한 위진남북조 수 당 원 명 청대에 이르는 중국 역사에서 유맹의 형성과정과 그 역할을 자세히 고찰하면서 이들의 사회사적 의미를 나름대로 평가했다.
본서를 통해 독자들은 중국적 유맹의 특성과 내용을 나름대로 파악할 수 있겠지만 대체로 두 가지 부류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젊은 시절 향리에서 하는 일 없이 떠도는 건달이나 부랑자 노릇을 하다가 나중에 역사에 남은 개국군주나 훌륭한 인물이 된 경우다. 한고조 유방, 명태조 주원장, 삼국연의에 나오는 유비 관우 장비 조조,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한다’고 자칭했던 수호전의 108호한 등이 그들이다.
둘째는 토호나 아전들의 비호를 받으면서 순진무구한 백성들을 착취하며 기생한 부정적 의미의 유맹집단이다.
본서는 이들의 해악행위를 사회사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조명했다. 이들이 끼친 시대별 사회적 폐해에서 독자들은 상당한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선진시대로부터 중세에 이르는 수당대까지 유맹의 종류와 내용이 비교적 단순한 데 비해, 송 원 명 청대인 근세로 내려오면서 점점 사회가 복잡해지자 유맹의 역할도 다양해지고 그에 따른 명칭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게 된다.
그들의 행동양태를 보면 요즘 우리 사회에 기생하는 깡패나 건달들이 무리지어 저지르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녀들에게 기생하는 사내를 기둥서방이라고 부르는데 당나라 때는 이를 묘객(妙客)이라고 했다. 송귀(宋鬼)는 송나라 시대에 백성을 등쳐먹던 악덕 변호사에 해당한다. 업취사는 사건 부로커인 거간꾼에 해당하는 인물의 명칭이다. 오늘의 우리 사회를 해치는 해악들이 이미 수백 년 때로는 수천 년 전에 그대로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사기 폭력 인신매매 살인 밀수 등 수많은 종류의 불법 또는 불륜적 행위가 바로 유맹 집단에 의해서, 대개는 정치권력의 비호와 결탁에 의해 이뤄졌음을 찾아 열거하고 비평했다.
이제까지 우리는 중국역사를 왕조의 형성과 몰락이라는 전통적 방법으로만 공부해 왔다. 그것은 외형적 역사의 이해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본서를 읽은 후의 느낌이다.
중국사회 이면사에 해당하는 이 책은 중국 역사를 올바르고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아울러 유려한 번역문장이 역자의 능력을 돋보이게 한다.
전인초(연세대 교수·중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