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탐미의 시대

  • 입력 2001년 2월 16일 19시 14분


◇회화사 수놓은 천재들의 광기와 사랑/조용훈 지음/288쪽, 1만원/효형출판

1901년 파리의 한 카페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준수한 용모의 한 젊은이가 권총으로 ‘제르멘느’로 알려진 연인 로르 가르갈로의 가슴을 쏘고 다시 자신의 관자놀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이 청년은 피카소의 단짝으로 시인이자 화가였던 카를로스 카사헤마스였다. 일년 전 처음 만나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파리에서 탐욕스럽게 예술적인 자극을 흡수했다. 친구의 자살에 충격받은 피카소의 ‘파리 정복’은 뒤로 미뤄져야 했다.

피카소는 이 무렵 ‘카사헤마스의 죽음’을 시작으로 ‘포옹’ ‘인생’ 등 카사헤마스의 죽음이 모티브가 된 작품들을 완성했다.

천재의 친구에 대한 우정일까? 물론 이 그림의 탄생에는 우정도 일부분의 진실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게 전부일까.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성불구였던 카사헤마스는 죽음을 통해 지상에서 불가능했던 사랑의 완성을 원했다. 그러나 카사헤마스는 죽고, 제르멘느는 살아났다.

1903년작 ‘포옹’에서 누드로 껴안고 있는 두 남녀 가운데 한 사람은 임신한 제르멘느이고, 또다른 인물은 그녀가 결혼한 다른 남성이다. 그렇지만 또다른 ‘반전(反轉)’은 이 그림의 초기 스케치에 등장하는 남성이 피카소라는 점이다.

이 책은 미켈란젤로, 피카소, 모딜리아니에서 신윤복 이중섭까지 동서양과 시대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면서 회화사를 수놓은 거장들과의 ‘사적인 만남’을 제공한다. 딱딱한 만남이 아니라 가슴이 찡하면서도 유쾌한 만남이다.

‘몽환, 그리고 에로티시즘’ ‘사랑과 우정’ 등 5장으로 나뉜 39편의 글이 거장들의 광기와 끊임없는 애정 편력의 이유, 그림에 얽힌 스토리로 안내한다.

청주교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이 책은 회화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이 아니라 주관적인 느낌과 감상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그림 자체와 그 뒷이야기를 하나로 꿰뚫는 글들은 그가 그림에 쏟아온 애정의 세월을 느끼게 한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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