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 입력 2001년 2월 19일 19시 09분


아무리 판타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해리 포터’란 이름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신드롬이라고 명명될 정도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해리 포터 시리즈는 현재 4부까지 출간됐다. 지난해 중순 네 번째 시리즈가 출간되었을 때 전세계 언론은 열광적인 반응을 중계하느라 분주했다.

하나의 책이 이렇듯 세계적 열풍을 불러일으킨 예는 근래에 드문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이 판타지의 종주국인 영국의 작가가 쓴 것임을 떠올린다면 이 열풍의 뒷면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짓게 하는 일면이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현실 세계에서 왜소하고 소외된 어린이였던 해리 포터가 보통 사람들(작품 내에선 ‘머글’이라 불리는)에겐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마법학교 호그와트에 입학해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가상의 세계 전부를 구현하는 대신 현실 세계에 가벼운 환상적 장치를 추가하는 이런 형태의 판타지를 ‘로우 판타지(Low Fantasy)’라 부를 수 있다.

로우 판타지는 배경이 현실이기 때문에 오히려 추가된 환상적 장치 쪽으로 관심이 집중되기 쉽다. 해리 포터 시리즈만 해도 현실의 영국보다는 마법학교 호그와트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일들이 주된 소재로 사용된다.

따라서 로우 판타지는 완전한 가공의 세계를 통해 오히려 현실 세계를 빗대어보는 ‘하이 판타지(High Fantasy)’와는 그 입장이 약간 다르다.

하지만 오랜 신화전승의 전통과 판타지의 역사를 가진 영국의 저력은 이 작품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 가지만 살펴본다면, 호그와트의 덤블도어 교장은 ‘멀린’ 훈장 서열 1급의 마법사로 소개된다. 영문학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아더왕의 이름은 알고 있을 것이다. 멀린은 그의 마법사로 그 이름을 딴 훈장이 제정될 정도로 유명했다.

조앤 K 롤링의 이야기는 부드럽고 경쾌하지만 이런 영국적 전통의 힘은 해리 포터 시리즈 곳곳에서 은연 중에 드러난다. 전통이라 불리는 것들은 아끼고 지키고 유지하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편이 항상 낫다. 사용되기 어려운 전통은 선조의 것이라 해도 버리는 편이 낫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영국의 전통적 환상 문학의 기법과 장치들을 자유로이 활용했고, 그 경이적인 성공의 이유 중엔 이런 자유로운 활용 또한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영도(판타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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