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찬의 문화비평]돌아온 'O양'의 미소 볼날은…

  • 입력 2001년 2월 20일 18시 38분


그녀가 돌아왔다.

그저 개인적인 삶의 한 순간이 공개됐다는 이유만으로 세상과의 모든 인연을 접고 떠나야 했던 그녀가 돌아왔다.

변명을 생각해 볼 틈도 없이, 상황을 되돌아 볼 정신적 여유도 없이, 그저 눈물을 흘리며 떠날 수밖에 없었던 1999년 2월의 ‘O양’. 그녀가 떠난 뒤, 사람들은 논란 끝에 이 사회에 만연한 관음증에 유죄를 선고했고, 그녀의 사생활은 보호됐어야 했다는 반성문을 공표하기도 했다. 그 해 말에는 영화 ‘거짓말’과 탤런트 서갑숙의 성고백서 파문이 일었고, 그들이 옳든 그르든 한국사회의 성윤리는 이미 재검토되고 있었다.

그녀의 사건이 있은 지 약 1년반이 지난 2000년 9월 탤런트 홍석천이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11월 가수 백지영의 성행위 동영상파일이 유포됐을 때 세상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잠시 이들을 화젯거리로 삼아 떠들어대던 언론은 곧 이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비난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들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들도 눈물은 흘렸지만, 홍석천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방송에 출연하기 시작했고, 백지영은 성공적인 ‘고별’ 공연을 마치고 잠시 마음 정리할 시간을 갖고 있다.

혼전성관계나 동성애는 무조건 안 된다는 도덕적 단죄 아래 나머지 사연은 파묻혀 버리던 예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그녀’의 사건 덕분에 이제 관음증과 대중의 알 권리와 사생활 보호권은 그 경계선을 놓고 팽팽한 긴장을 이루고 있다.

그녀가 돌아왔다.

타국 땅에서 쓸쓸히 “여자로서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만 마주치면 내게 손가락질을 할 것 같다”며 울먹이던 그녀가 돌아왔다.

이제 그녀에게 던져지는 관심은 비난과 질타가 아니다. 마녀재판하듯 그녀를 몰아붙였던 그 시절에 대한 미안함과 그녀의 성숙한 복귀를 기다리는 마음일 뿐이다. 화제의 인물이었던 그녀의 상품성을 이용하려는 유혹도 거세겠지만 그녀에게는 진정으로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의 가장 은밀한 영역인 성의 문제는 항상 그 사회의 개방성과 탄력성을 시험하는 기준으로 시험대에 올려진다. 그리고 여성은 인간의 역사에서 언제나 약자였기에 여성에 대한 대우는 그 사회에서 평등의 척도가 돼 왔다.

남성중심적이고 폐쇄적인 가치관의 사회에서 여성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이미 그녀의 불행을 의미했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이미 한국현대사에서 사생활 보호권의 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킨 역사적 인물이 됐다. 이제 그녀가 이 사회에서 얼마나 당당하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은 한국사회 인권의식 수준의 한 척도가 될 것이다.

그녀가 개인의 사생활 보호권을 지키는 투사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배우가 되든 모델이 되든 아니면 평범한 직장여성이나 가정주부가 되든, 그저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진짜 ‘공인’으로서 그녀의 역할이다.

이제 어느 포스터에서, 잡지표지에서, 영화에서, 거리에서, 이제는 조금 갸름해진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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