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서울 외교가에서는 러시아(구소련 포함) 역대 지도자들의 ‘대머리 격세유전’이 화제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부터 푸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머리숱이 많은 지도자와 대머리 지도자의 순환적 통치’가 예외 없이 이어졌다는 것.
‘털보’였던 니콜라이 2세의 차르 체제를 무너뜨리고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레닌(1917∼24년 집권)은 20대 때 이미 대머리였다. 그 다음 집권한 이오시프 스탈린(24∼53년)은 숱 많은 까만 머리와 콧수염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니키타 흐루시초프(53∼64년)는 방 천장의 불빛을 고의로 반사해 협상 상대방에게 심리적 위압을 줬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확실한 대머리였다. 흐루시초프를 실각시킨 레오니트 브레즈네프(64∼82년)는 ‘스탈린의 콧수염을 눈썹에 옮겨 달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털보였다. 그 후로도 ‘유리 안드로포프(82∼84년·대머리)→콘스탄틴 체르넨코(84∼85년)→미하일 고르바초프(85∼91년·대머리)→보리스 옐친(91∼2000년)’으로 이어지며 이 ‘대머리 법칙’은 그대로 지켜졌다.
러시아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법칙은 80년대 초 브레즈네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후임 자리를 놓고 후계자들이 각축을 벌일 때부터 유명해졌는데, 러시아 대선 때마다 이 법칙이 유지될지가 언론과 국민의 관심사였다는 것.
대머리치고는 상대적으로 머리숱이 많은 편인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완벽한 대머리’인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수 등 경쟁자들로부터 “어설픈 대머리에는 이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공격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