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시중에는 타이어 튜브로 만든 고무공이 판매되고 있었는데 우리에겐 꽤 고가의 상품이라 누가 그것을 사기라도 하면 축제 분위기가 됐다. 고무공이 바람이 빠지거나 터지기라도 하면 자전거 수리점에서 때워 쓰곤 했는데 나중에는 공이 덕지덕지 반창고를 붙인 얼굴처럼 되곤 했었다.
이후 중학교에 진학해 처음으로 정식 축구볼을 접했는데 쇠가죽으로 만든 축구볼이 왜 그리 단단하고 무거웠던지. 얇은 천의 운동화발로 볼을 차는 순간 발이 깨지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축구부 선배가 ‘볼을 참하게 찬다’며 나에게 축구부에 들어올 것을 권해왔다. 기뻤지만 아무래도 감당해낼 자신이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반에서 키가 5번 이상을 넘어가 본 적이 없는 왜소한 체격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만화쟁이가 되어 ‘울지 않는 소년’, ‘우리는 형제’, ‘까까머리’ 등 적잖은 축구 만화를 그리면서 나름대로 축구에 대한 꿈을 화지 위에 펼쳐왔다.
요즘 한국 축구에 대한 문제점이 많이 거론되고 있으나 그간 엄청난 발전을 해온 것을 안다. 내 작품 ‘울지 않는 소년’에서 독고탁의 활약으로 한국 축구가 월드컵을 제패했듯이 2002 월드컵에서 16강 또는 8강 진입, 그 이상의 성적으로 우리를 환호시킬 것을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