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감독이 휘두른 서슬퍼런 칼날의 첫 희생자가 탄생했다. 해태 감독시절 한국시리즈 아홉 차례 우승이라는 급자탑을 쌓은 김감독은 올 시즌 삼성 유니폼으로 갈아 입으면서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부드럽게 살기로 했다”며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그랬던 그가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꿨다. 성난 ‘코끼리’의 포효가 마침내 마른 하늘에 날벼락 떨어지듯 삼성의 전훈지인 미국 애리조나 하늘을 뒤흔들었다. 애꿎은 희생자는 프로 11년차 신동주(29). 엉치등뼈 부상을 핑계로 훈련을 게을리하던 신동주에게 ‘고향 앞으로’라는 김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진 것.
“꼬장꼬장했던 김감독님도 많이 달라졌다”며 긴장의 고삐를 놓았던 선수들은 신동주의 조기 귀국에 자극받아 눈에 불을 켜고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사실 김감독은 겉으로는 터프한 남성적 이미지를 풍기지만 속내는 여성처럼 섬세한 지도자다. 어느 것 하나 설렁설렁 넘어가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세부적인 일을 꼼꼼하게 챙기며 시어머니 며느리 다루듯 미주알 고주알 말로 늘어놓지도 않는다. 최대한 말을 아끼며 문제점을 파악한 뒤 꾹 참고 있다가 적절한 시기를 선택, 한꺼번에 폭발시킨다. ‘충격요법’을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일시에 해결하는 스타일이다. 스프링캠프의 연례행사인 김감독의 ‘군기잡기’도 바로 산전수전 다 겪은 풍부한 경험에서 나온 계산된 노림수인 것이다.
해태 감독시절에도 스프링캠프 분위기가 느슨해지면 돌연 ‘공포분위기’를 조성, 선수들의 긴장감을 팽팽한 활시위처럼 조이곤 했다. 별일도 아닌데 의자를 집어던지거나 배트를 부러뜨리는 김감독의 성난 모습에 드세기로 유명한 해태선수들도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며 꼬리를 내리곤 했다.
김감독은 이러한 심리전을 스프링캠프뿐만 아니라 페넌트레이스에서도 곧잘 써먹는다. 선수단 내부에 알력과 갈등이 생기면 외부환경을 동원해 팀내의 문제점을 치유한다. 대표적인 방법이 심판과의 실랑이. 거센 어필은 물론 몸싸움까지 벌이며 선수들의 승부욕을 자극한다. 외부적인 환경을 빌려 팀의 ‘공동의 적’을 만들면 내부적인 불협화음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흐트러졌던 팀워크는 차돌처럼 단단해지게 마련이다.
삼성은 우승에 목이 말랐다. 최근 돈보따리를 활짝 풀고 스타선수 쓸어모으기에 나섰고, 그것도 모자라 ‘우승제조기’라는 김응룡 감독마저 영입하며 구단의 오랜 숙원인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꿈에 잔뜩 부풀어 있다.
김감독 특유의 고도의 심리전이 올 시즌 더욱 활개를 칠 것이라는 야구전문가들의 예측도 그래서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심리전의 대가’ 김응룡 감독의 기상천외한 용병술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 궁금하다.
<주간동아 스포츠 뒷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