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적 연구는 호모사피엔스의 원형, 즉 우리 자신을 문명으로 화장하기 전의 맨 얼굴을 보여주어 언제나 흥미롭다. 인간이 삶의 터전인 자연과 자원을 이용하는 방법, 그리고 동료 인간들과의 관계 정립을 통해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방식은 아주 기이하고 어리석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잘 관찰하면 인류 공통의 기본원리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흥미진진한 인류학 논문 19편이 실려 있는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한경구 외 저·문화인류학회 편·1998년)는 세계 여러 지역에 사는 다양한 종족들의 삶을 소개한다. 각 논문의 앞 부분에 우리나라 소장 인류학자들의 배경설명과 논평이 있어 이해를 돕는다.
소개된 여러 종족들의 관습, 혼인 및 친족관계의 형태, 권력구조와 권력행사의 방법 등은 신기하고 흥미진진하다. 인간사회 형성의 원형을 보여주는 그 모습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내 모습을 발견하기 위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신선하기도 하고 약간 두렵기도 한 모험이다.
주니족 인디언 남성들은 지극히 온순해서, 저녁에 집에 돌아왔을 때 자기 소지품 보따리가 문 밖에 놓여있는 것을 보면 이혼당한 것을 알고 눈물을 흘리며 그것을 주워 자기 어머니 집으로 갖고 돌아간다고 한다. 반대로 브라질의 열대림에 사는 야노마모족의 남자는 폭력적인 남성이 남성답다고 보기 때문에 아내를 심하게 구타하고 행실이 의심되면 작살같은 창으로 넓적다리를 찌른다. 그리고 사법제도나 경찰서가 없는 동부 그린랜드의 에스키모들은 노래시합으로 분쟁을 해결한다고 한다.
이스터 섬(Easter Island)의 거대한 석상들은 이 섬이 서양인들에 의해 발견된 이래 심오한 수수께끼였다. 초목도 없고, 미개한 원시인이 겨우 2000명만 사는 남태평양 고도에 10∼20m 높이의 거대한 석상 수 백 개를 누가, 왜, 어떻게 만들고 세웠을까? 인류학자들은 그 의문을 풀었고, 그 충격적 해답은 지구의 미래에 대한 무시무시한 교훈을 담고 있다.
이 책에는 원시부족사회에 대한 연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브라질 다인종 사회에서의 결혼의 정치학, 비만(肥滿)을 보는 여러 사회의 상이한 시각, 그리고 일종의 의식(儀式)으로서 외과수술과정 등 문명사회의 제 현상을 분석한 논문들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류학적인 접근법과 인류학 연구에서 얻은 통찰력이 오늘날의 집단이나 사회의 문제해결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성찰도 담겨 있다.(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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