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을 맛보며 자랐던 플로베르
플로베르는 낭만주의가 확립되던 즈음에 루앙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와는 달리 그의 집안은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분위기였다. 아버지는 시립병원의 유명한 외과의사였고, 어머니 역시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고 현명한 편이었다.
플로베르에게는 아홉 살 차이가 나는 큰형과 세 살 아래인 여동생이 있었는데, 부모는 장래에 아버지의 뒤를 이을 영리한 맏아들에게 관심을 쏟았고, 막내딸에게 애정을 주었다. 게다가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식구들에게 '집안의 백치'라고 인식되었다. 이렇듯 아버지로부터 유형무형의 압박을 받고 또 늘 형제간 비교에서 열등감을 맛보며 자란 플로베르는 현실세계와 언어로부터 동시에 소외당한 존재였다. 이러한 플로베르가 아홉 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는 사르트르의 플로베르에 대한 비평서《집안의 백치》에 잘 나타나 있다.
'소외당한 존재였던 어린 플로베르는 글을 배우게 되자 글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추어 소외된 존재로서의 자각을 외면화시켰다. 그는 자유를 향한 돌파구를 우선 연극에서 찾았다. 그는 열한 살 때부터 식구들을 불러 모아놓고 연극놀이에 몰두했지만, 아버지는 성가시다는 이유로 이것조차 금지시킨다. 이제 플로베르에게서 자유는 글자의 세계뿐이었다. 플로베르와 글과의 연결은 소외당한 존재의 자기 확신이라는 수동적인 것이었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그는 '마지못해' 문학이라는 '음침하고 고독한 놀이'를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엄청난 스캔들로 뜨거운 논란의 대상
플로베르는 《성 앙트완느의 유혹》의 초고를 완성해서 절친한 친구인 루이 부이예와 막심 뒤 캉에게 서른 두 시간에 걸쳐 낭독했으나 혹평을 당하자 원고를 서랍 속에 감춰버린다. 그때 루이 부이예는 당시 사회의 화젯거리였던 '들라마르 부인 사건'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소재로 해서 소설을 쓰도록 충고했다. '들라마르 부인 사건'이란 당시 으젠느 들라마르의 부인 델핀이 생활의 권태를 느끼다 삶의 돌파구이자 희망으로 바람을 피고, 결국은 죽음을 맞은 사건이었다.
그후 2년간 동방을 여행하는 중에도 플로베르는 소설 구상을 계속해, 크르와세로 돌아오자마자 《보바리 부인》에 착수한다. 그리고 끈질긴 작업을 통해 무려 53개월 만에 작품을 완성한다. 이후, 막심 뒤 캉의 주선으로 《파리 평론》에 《보바리 부인》의 연재가 시작되는데, 잡지가 발매되자마자 각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뜨거운 논란 대상이 되었다. 《파리 평론》은 정부의 검열을 우려한 나머지 작가의 동의 없이 원고 일부를 삭제한 후 게재하려 했지만, 플로베르의 강한 반발에 부딪친다.
결국 정부에서는 1957년, 종교와 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하여, 《보바리 부인》을 실은《파리 평론》과 플로베르를 기소하였고, 1월 19일에 열린 재판에서 마리 앙트완느 줄 세나르의 뛰어난 변호로 무죄 판결을 받는다. 플로베르는 작품에 빛을 보게 해준 그에게 이 책을 헌사한다. 이러한 엄청난 스캔들 이후 《보바리 부인》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독창적인 문체
새로운 문학사조와 문예이론이 나올 때마다 플로베르는 최첨단 이론의 선구자로 각광받으며 그 현대성을 새롭게 쇄신하곤 했다. 60년대에 누보 로망이 등장했을 때에는 누보 로망의 선구자로 인식되었고, 이야기 구조 분석이 새로운 문학 이론으로 대두되던 20세기 후반에는 그의 모든 언어적 실험이 다시 한번 현대성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소설 이론에 관한 플로베르의 독창성은 바로 문체에 관한 것이었다. 문체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한 플로베르에게 있어서 내용은 상대적인 중요성만을 가질 뿐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품의 내적 논리와 구조 그리고 완벽한 짜임새인데 그 완벽성의 관건은 바로 문체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플로베르에게 문체는 '언어적인 실체', 즉 텍스트의 물질적인 측면인 동시에 그의 정신인 셈이다. 실제로 플로베르의 모든 노력은 소설의 예술성, 즉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문체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플로베르가 내용을 무시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는 내용과 형식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예술'은 곧 '진리'이며, 문체는 '일종의 생각하는 방식'이라고 여긴 것이다.
실제로 플로베르는 그의 《서한집》에서 '정확한 말과 음악적인 말 사이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존재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내용과 형식의 조화, 이것이 바로 '예술을 위한 예술'이고, 탐미주의다. 형식에 대한 이 절대적인 추구가 오늘날까지 플로베르를 여전히 생생한 현대적 작가로 만들어주는 요인이 되었다.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으로 근대 소설에서 사실주의를 확립하고, 자연주의로 가는 길을 닦아놓았으며, 내용면에서 현실 사회, 특히 부르주아를 비난하면서도, '예술 지상주의자'로서 문체의 조탁과 정확한 표현을 위해 평생 노력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샤를르 보바리는 어머니의 기대에 따라 의사가 되고, 토트에 개업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맺어준 돈푼이나 있어 보이는 과부와 결혼했다. 그런데 곧 부인이 죽어버리자, 진료차 만났다가 마음에 두고 있던 엠마와 재혼한다. 끊임없이 낭만적이고 정열적인 사랑을 꿈꾸는 엠마는 막상 결혼생활에서 그러한 것들을 느끼지 못하자 남편이 싫어지고 권태로움만 느낄 뿐이다. 보이에사르의 무도회에 참석한 뒤로, 그러한 갈망은 더욱 커져간다.
남편 샤를르는 그런 아내의 환경을 바꿔주려는 생각에 용빌로 이사를 간다. 엠마는 거기서 알게 된 레옹이라는 사내와 사랑에 빠지지만 채 내색도 하지 못하고 레옹을 떠나보내야 했다. 이후, 로돌프라는 바람끼 있는 남자에게 속아 엠마는 자신의 정열과 사랑을 온몸으로 바친다. 그리고 그와 함께 도망칠 계획을 짠다. 하지만 막상 떠나기로 한 날, 그로부터 떠날 수 없다는 편지를 받게 되는데......
이윤경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불어과 석사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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