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함석헌 평전

  • 입력 2001년 3월 9일 19시 18분


한국철도대 졸업 후 8년 간 철도청에 근무하다가 함석헌의 죽음을 알고는 사직서를 내고 영국으로 떠났던 청년 김성수는 약 10년만에 함석헌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김씨는 이 박사학위 논문을 토대로 ‘함석헌 평전’을 펴냈다.

“퀘이커의 본산지에서 서구학문의 관점에서 선생님의 사상을 연구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사상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영어를 빌려야 했습니다.”

1979년 함석헌을 만난 후 그도 함석헌과 같은 퀘이커 교도가 됐다. 17세기 중반 영국 랭카셔 지방에서 창설된 퀘이커는 기독교의 한 종류로 목사나 신부 없이 평신도 중심으로 모임집(Meeting House)에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린다.

퀘이커는 내세 구원보다 사회 개혁과 세계 평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활동해왔기 때문에 1947년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저자는 “영국 대학에서 받은 저의 학사 석사 박사 학위논문의 주제가 모두 함석헌에 관한 연구였다는 것은 서구학문의 기준에서 함석헌의 사상이 인정받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영국 에딘버러대에는 유영모에 관한 강좌도 개설돼 있다고 전한다. 그는 함석헌 사상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먼저 1933년 발간된 함석헌의 저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에 대해 “일제 치하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발견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조선사람들이 일제 치하에서 받는 고난이 세계사에서의 임무를 맡기 위해 주어진 짐이라는 기독교적 해석이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개인의 영적 완성과 사회 개혁을 동전의 양면처럼 보았다는 것이다. 함석헌이 광복 후 민주화 운동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이런 사상의 결과였다.

마지막으로 동서양 종교의 융합을 꼽는다. 함석헌은 기독교와 함께 다양한 동양종교가 공존하는 한국사회에서 동서양 종교 간의 대화와 융합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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