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가 최근 민원업무 자동화를 위해 지역내에 수십대의 무인 민원발급기를 설치했지만 제한된 기능과 잦은 고장, 엉뚱한 입지선정 등으로 이용자들이 거의 없어 말 그대로 ‘무인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강남구는 지난해 9월 “서울시와 행자부 망을 연계한 통합 무인 민원발급체계를 구축해 일선 구청에서는 최초로 각종 민원증명서를 자동민원발급기를 통해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올해 초까지 관내 동사무소와 은행 백화점 등에 62대의 발급기를 설치했다.
구청측은 “주민등록과 호적 등초본을 비롯해 토지 자동차 등 10여 종류의 민원서류를 구청이나 동사무소를 방문하지 않고도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해 연간 220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취재진의 확인 결과 현재 무인 민원발급기의 이용 실적은 극히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구청측은 62대의 발급기가 발행하는 증명서가 하루 평균 170건이라고 밝혔다. 대당 6000여만원 상당의 발급기 1대가 발행하는 민원서류가 하루에 3장 정도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처럼 이용실적이 저조한 가장 큰 이유는 지자체가 발행하는 민원증명 건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민등록과 호적등초본 등 주요 민원증명을 뗄 수 없기 때문. 현재 발급받을 수 있는 증명서는 토지대장과 건축물대장 등 5종에 불과했다.
또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발급기의 성능도 이용자들의 외면을 부채질하고 있다.
취재팀의 확인 결과 전체 발급기의 30%가 넘는 20여대의 발급기가 작동이 안 되거나 잦은 고장으로 제대로 이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10월 발급기가 설치된 기업은행 무역센터지점의 한 관계자는 “구청의 요청으로 발급기를 설치했지만 에러가 자주 발생해 아예 전원을 꺼놓는 날이 많다”며 “복잡한 은행에서 자리만 넓게 차지하고 있어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발급기를 설치한 곳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 26곳의 동사무소 내에 설치된 발급기의 경우 동사무소 직원을 통해 민원서류를 모두 발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발급기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 동사무소 직원들은 “동사무소가 쉬는 휴일이나 야간에 이용할 수 있도록 차라리 동사무소 밖에 설치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강남구 외에도 서울시내 각 구청이 행자부의 행정정보화사업 지침에 따라 앞다투어 무인 민원발급기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 같은 시행착오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것.
행자부 관계자는 “강남구의 경우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민자유치를 통해 성급히 기계를 도입해 운영하다보니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신원확인을 위한 법적 근거와 시스템이 갖춰지면 이용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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