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선원출신 이해동씨 "누구를 위한 법입니까"

  • 입력 2001년 3월 15일 00시 12분


“법의 생명은 형평성 아닌가요.”

밀수사건의 공범으로 몰려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은 한 선원이 주범들이 추징금을 내지 않는 바람에 평생 모은 전 재산을 날리게 됐다.

한일 정기화물선의 통신장으로 일했던 이해동씨(46·부산 사하구 다대2동)는 99년 1월 갑자기 부산지검 특수부에서 밀수사건과 관련해 조사할 것이 있으니 출두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97년 1월23일 일본 시모노세키항에서 참기름 18t을 밀수해 국내에 유통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

이씨는 이같은 밀수에 가담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에 순순히 조사에 응했다. 조사결과 공모를 하거나 금품을 받은 사실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당시 동료 선원의 부탁을 받고 밀수품인지도 몰랐던 참기름 몇 박스를 트럭에 옮겨 실어줬던 것이 문제가 돼 결국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문제는 벌금과 함께 나온 공동추징금 8000만원.

밀수 등 일부 강력범죄에 적용되는 공동추징은 부정하게 얻은 이득을 개개인이 얻은 이익 정도에 상관없이 사건 관련자 모두에게 공동으로 부담케 하는 제도.

밀수사건 관련자 10명 중 이씨를 제외한 9명은 이미 재산을 모두 빼돌렸거나 재산이 없었기 때문에 이같은 제도에 따라 유일하게 집이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돼 있었던 이씨 혼자 추징금 8000만원을 감당해야할 처지에 놓였다.

결국 3년전 전 재산을 털어 처음으로 마련한 30평짜리 아파트(시가 8000만원)가 지난해 12월 압류됐으며 이달 말경 법원에 의해 경매처분될 예정이어서 이씨는 어머니(75)와 부인(33) 딸(5) 등 가족과 함께 길거리로 나앉게 됐다.

반면 구속됐던 주범 3명은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추징금도 전혀 내지 않고 6개월에서 1년6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나와 직장까지 얻었다.

이씨는 답답한 마음에 변호사와 법률구조공단, 부산지검장실까지 찾아다니며 도움을 호소했지만 현실적으로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답변만 얻었다.

이씨는 “밀수방지를 위한 공동추징제도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주범은 한푼도 내지 않고 사실상 밀수에 가담하지도 않은 내게 모든 추징금을 부담시키는 것은 분명히 법의 형평성 원칙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며 “이 사건 때문에 직장까지 그만뒀는데 집에서 쫓겨나면 우리 가족은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산지검 공판부 추징금 담당 박상길(朴相吉)검사는 “이씨의 딱한 사정은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국가기관이 구제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부산〓석동빈기자>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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