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포럼]안병영/충성도 따른 개각은 그만

  • 입력 2001년 3월 15일 18시 31분


개각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각의 폭도 소폭을 넘어서리라는 예상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개각에 앞서 깊이 생각해야 할 몇 가지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 나라의 장관을 고르는 일은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의 표현이며, 대통령의 정치적 정책적 비전을 함축한다. 따라서 국민은 각료들의 면면을 보고, 대통령의 정치적 청사진을 읽을 수 있고, 국정전개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김대통령은 우선 이번 개각을 ‘성공적 대통령’이 되는 회심의 승부처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대통령의 임기가 이미 3년을 넘어섰고, 내년이 선거의 해인 만큼 실질적으로 국정에 전념할 수 있는 시기가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늘의 시점은 김대통령이 국정의 성공적 운영을 통해 국민적 신뢰를 되찾을 것인가, 아니면 합종연횡의 정치적 제휴나 정계개편과 같은 정략을 통해 권력적 바탕을 강화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우선순위를 ‘민생’에 두느냐, ‘권력’에 두느냐에 따라 개각내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권하고 싶은 것은 단연 민생추구 개각이다.

▼능력-인품 우선 따져야▼

그러나 이런 바람이 무망(無望)한 일이 될 것 같아 마음이 어둡

다. 현정부가 정치적 계산을 앞세워 자민련 등과의 공조 내지 연정에 비중을 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고려에 따라 무리하게 정치적 조합을 하다보면 내각의 질과 효율성이 떨어지고 정책조율이 더 어렵게 될 것은 뻔한 이치이다. 상황이 그렇다 해도 몇 가지 고언(苦言)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정부는 그동안 장관 충원기준으로 언필칭 ‘개혁성향과 능력’을 앞세웠지만, 결과는 대체로 ‘정치적 고려와 연고주의’ 쪽으로 기울었다. 정치적 충성을 따지고 지역적 연고에 마음을 쓰다 보면 ‘인재 풀’은 당연히 옹색해진다. 항간에는 현 정권의 인재 풀이 거의 고갈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딱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그간의 개혁부진, 잦은 정책실패 등도 이런 파행적 장관 충원 관행과 무관하지 않았다. 장관 충원에서 정치적 고려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만은 능력과 개혁의지를 두루 갖춘 빼어난 인재를 널리 찾아야 할 때다. 민주화가 이만큼 진척된 정치사회에서 장관을 충원하면서 바닥이 훤히 보이는 얕은 인재 풀에 매달려 ‘적과 동지’를 가른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아울러 김대통령은 이번 개각에서 ‘인품’이라는 덕목을 크게 고려해야 한다. 현 정부가 이제껏 중요한 공직임용에서 이 점을 소홀히 했다는 게 중평이다. 오늘날 장관은 각종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 중재, 해결하는 조정자로서의 역할이 크다. 따라서 장관은 정(政)과 관(官)뿐만 아니라, 시장과 시민사회가 두루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적정수준의 인격을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균형감과 성숙미가 중요하며, 가능하면 얼마간 마음을 비운 사람이어야 한다. 정책결정에 앞서 대통령 얼굴이 아른거리기보다 서민의 작은 아픔에 마음 저리는 사람, 장관직을 대단한 ‘자리’로 알기보다 크나큰 ‘멍에’로 알고 밤새 고뇌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이 기회에 김대통령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은 장관 임용 후에 그에게 폭넓게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관에게는 그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부여하고, 책임과 권위로서 국정에 헌신하게 해야 한다. 크고 작은 일에 대통령이 일일이 간섭하고 지시하면 장관은 유명무실해지게 된다. 정책 자율성이 없는 장관은 실제로 집행책임자인 고위관료에 불과하다. 웬만한 일은 장관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큰 흐름만 주재하면 된다.

▼임용후엔 폭넓게 권한 위임을▼

마지막으로 장관의 잦은 교체는 정부실패의 근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서구 여러 나라의 경우 평균 장관 재임기간이 3∼4년인데, 우리의 경우 1년을 채우기도 힘들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장관이 장관직 학습 도중에 교체되기 십상이다. 장관을 자주 바꾸면, 정책의 단절로 정부성과는 떨어지고, 장관은 성급하게 단기적 과실에 매달리며 대통령과 언론 눈치보기에 바쁘게 된다. 장관이 한낱 스쳐가는 ‘과객(過客)’으로 전락하는 일은 이번으로 끝나야 한다.

김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지 많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는 길이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안병영(연세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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