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지금 여기 일상적 세계와는 다른 세계가 있음을 느끼는 건 언제인가? 혹은 어떤 상황에서 그런 초월적 세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가? 당신이 우리 주변에 천사가 날아다니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는 경우는 언제인가? 난 한 사람을 알고 있다. 그의 귓가에 천사의 날갯짓 소리는 이럴 때 들려 온다.
첫째, 어린 아이가 무서운 꿈을 꾸다가 깨어보니 주위는 어둠에 잠겨 있다. 낯익던 풍경은 사라지고 어둠의 혼란만이 가득하다. 아이는 울면서 엄마를 부른다. 울음소리에 달려온 엄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아이는 엄마의 가슴 속에서 이제 혼란이 사라지고 질서가 다시 왔음을 느낀다.
아이처럼 인간은 혼란 속에서 공포의 울음을 터뜨린다. 미치지 않고 살려면 이 세상이 잘 짜여진 질서로 움직이고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이런 존재론적 신뢰는 이미 초월적 차원을 전제하고 있다.
둘째,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에게 엄마가 부르는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는다. 놀이의 세계는 죽음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일상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한다. 순수한 놀이의 세계에서 일상의 시공간은 초월되며, 고통과 죽음도 정지된다.
폭탄이 비처럼 퍼붓는 전쟁터에서도, 빙산에 부딪혀 배가 침몰하고 있을 때에도 놀이의 세계는 우리를 초월적 차원으로 연결시킨다.
셋째,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이 취할 길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절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쨌든’ 희망을 갖는 것이다. 절망한 인간은 곧 죽는다. 그러나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가진 사람은 살아 남는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극한상황에서 어째서 말도 안되는 희망을 갖느냐고 묻지 마라.
넷째, 독재체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무력반란이 아니다. 그건 한 마디의 유머이다.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체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독재자의 위선이 한방에 날아가기 때문이다. 유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독재체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유한한 운명 자체도 극복할 수 있다. 어떤 형태의 구속도 우리를 영원히 옭아맬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바로 유머의 메시지이며, 초월의 신호이다.
이런 천사의 날갯짓 소리를 듣는 이는 이미 초월적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그(녀)는 그런 연결을 통해 풍성한 삶의 에너지를 얻고 남에게도 나눠주는 자이다. 이런 이에게는 그룹 아바의 노래, ‘나는 꿈이 있어요(I have a dream)‘가 무엇보다 달콤한 울림을 지닐 것이다.
장석만(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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