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연애 소설 읽는 노인

  • 입력 2001년 3월 16일 19시 09분


◇연애 소설 읽는 노인/루이스 세풀베다 지음/192쪽, 7500원/열린책들

개발업자와 노다지꾼에 의해 무참하게 유린당하는 아마존의 밀림. 우기로 접어든 개척지 마을에 처참하게 죽은 백인 밀렵꾼의 시체가 떠내려온다.

원주민과 살면서 자연의 지혜를 터득한 노인 볼리바르. 그는 커다란 암살쾡이가 자기 새끼를 무참하게 죽인 인간에게 복수한 것임을 직감한다. 불길한 예감은 사실임이 드러나고, 그칠 줄 모르는 어미의 인간사냥이 가까이옴에 따라 주민은 두려움에 술렁거린다.

이 소설은 칠레 작가인 루이스 세풀베다(52)에게 일약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인간과 살쾡이의 죽음을 건 대결의 팽팽한 긴장감은 도중에 책을 덮지 못할 만큼 흥미진진하다. 연애소설에 심취한 노인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아마존 밀림의 압도적인 매력은 금새 책에서 튀어나올 것처럼 생생하다.

이 작품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 여러모로 비교된다. 거대한 물고기와 사투를 벌여 이긴 늙은 어부 산티아고의 승리가 위풍당당하다면, 살쾡이의 자살을 집행해준 것과 다름없는 볼리바르의 승리는 허무하다. 설교하듯 밝혀 적지는 않았어도, 대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모멸감이 긴 여운을 남긴다.

세풀베다는 이 작품을 1989년 개발업자의 손에 살해당한 세계적 환경운동가인 치코 멘데스에게 헌정했다. 그간 10개국어로 번역되어 수백만명의 독자를 사로잡았고, ‘베어’로 유명한 장 자크 아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 그의 면모는 함께 번역 출간된 대표작 ‘감상적 킬러의 고백’(1996)과 ‘귀향’(1994)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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