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군사정권이 바미안 지역의 간다라 불상을 파괴해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미국 CNN 방송은 18일 바미안 석불의 파괴된 모습을 담은 화면을 공개해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이번 만행은 다른 나라 문화재가 아니라 자기 나라의 문화재를 파괴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인류 역사에서 이같이 크고 작은 문화 파괴는 끊이지 않았다. 두 차례에 걸쳐 문화 파괴의 부끄러운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대책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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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의 반달 리즘]일제 광개토왕비문 조작 만행 |
인류의 반달리즘은 기원전 4세기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356년 그리스 에페소스의 헤로스트라투스란 사람은 아르테미스 신전에 불을 질렀다. 방화 이유는 ‘어차피 나쁜 짓을 하려면 후세까지 알려질 악행을 저질러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그리스 최초의 순대리석 신전으로 파르테논 신전의 두 배 규모에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건축물이었다.
기원전 3세기초 중국 진시황의 분서갱유 역시 문화반달리즘의 하나였다.
그리스 파르테논신전 역시 반달리즘의 희생물이다. 17세기 그리스를 침공한 오스만터키 군은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을 점령해 화약고로 썼다. 베네치아 연합군은 터키군을 물리치기 위해 대포를 발사해 신전의 지붕을 날려버렸다.
터키는 17세기 이집트 스핑크스를 훼손하기도 했다. 이집트를 침공한 터키 군이 스핑크스의 코를 향해 사격연습을 했다. 18세기말 이집트를 원정한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가 코를 훼손했다는 설도 있지만 터키군이 훼손했다는 것이 정설.
20세기초엔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유적에 대한 영국 독일 일본 탐험가 고고학자들의 약탈이 자행됐다. 대표적인 인물이 영국의 탐험가 오렐 스타인. 그는 당시까지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로 알려졌던 9세기 ‘금강경’ 등 둔황 천불동(千佛洞)에 보관 중이던 엄청난 양의 불경 고문서를 무단 반출했다.
2차대전 무렵 나치 독일과 소련, 프랑스, 이탈리아 등 강대국들은 서로 물고 물리는 문화재 약탈전을 자행했다. 나치에게 주변국가의 문화재는 파괴의 대상이었다. 폴란드 침공시 회화와 조각품들을 닥치는대로 파괴했다. 나치는 당시 2만점 이상의 그림과 조각품들을 프랑스에서 약탈해갔다.
여기에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빠질 리 없다.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무솔리니는 1937년 오벨리스크를 강제로 약탈, 세 동강으로 분해해 운반한 뒤 로마 콜로세움 맞은 편 유엔식량농업기구(FAO) 건물 앞에 세웠다.
프랑스 비시정권은 1940∼44년 유태인들로부터 10만여점의 문화재를 약탈했다. 러시아는 1945년 독일에서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이만이 트로이 유적에서 발굴한 프리아모스왕의 보물 등 약 200만점을 약탈해갔다. 문화재 파괴와 약탈은 최근에도 계속됐다. 91년 보스니아 내전으로 인해 크로아티아의 중세 고도 두브로브니크의 도시 건축물이 적잖이 훼손됐다.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불리는 이 도시는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 이후 네덜란드 헤이그 전범 재판소는 이 도시의 폭격이 유고연방 해체과정 중 가장 큰 죄악이었다고 보고 도시를 폭격한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병사들을 문화재 파괴 전범으로 기소했다.
92년엔 과격 힌두교도들이 인도 북부 아요드야에 위치한 16세기 이슬람 사원 건축물을 파괴해 이슬람 사회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개인에 의한 반달리즘도 그치지 않았다. 97년 덴마크의 인어동상 훼손사건이 대표적인 경우. 안데르센의 명작동화 주인공을 기리기 위해 1913년 세운 이 동상은 지금까지 왼쪽 팔이 한번, 목이 두번이나 잘리는 수난을 당했다. 98년엔 한 괴한이 로마 카피톨리니미술관을 습격해 전시 중인 앙리 마티스의 그림 3점(‘서있는 조라’등)을 송곳으로 찌르고 긁어 훼손했다.
종교적 신앙의 차이로 인한 문화 파괴도 빼놓을 수 없다. 97년 호주 빅토리아국립미술관에선 미국의 전위작가 안드레스 세라노의 사진 ‘피스 그리스도’피습 사건이 발생했다. 이 작품은 당시 ‘신성모독’ 여부를 놓고 기독교계의 반발을 샀었다.
그러나 문화예술을 지키기 위한 감동적인 노력도 있었다. 1937년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국정부의 마누엘 아자냐 대통령이 대표적인 경우.
프랑코 일파가 쿠데타를 일으켜 수도 마드리드를 무차별 공격할 때였다. 그는 문화재보존이 최우선이라는 신념으로 대통령직을 걸고 프라도박물관 등의 문화예술품을 제네바의 국제연맹 본부로 피신시켰다. 이밖에 1940년 파리 함락 직전, 불안을 무릅쓰고 루부르 박물관의 문화재를 피신시킨 파리 시민들의 노력도 세계 문화사에 길이 남을 소중한 노력이다.
최근 들어서는 무분별한 개발이 문화재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11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크메르제국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앙코르와트는 지금 관광객 유치를 위한 주변 개발로 인해 훼손되어가고 있다. 앙코르와트는 현재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지만 파괴를 우려한 유네스코에 의해 ‘위험에 처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목되어 특별관리를 받고 있다. 앙코르와트의 사례는 약탈이나 무력 뿐 아니라 무책임한 주변 환경 개발과 무관심 역시 문화유산 파괴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반문병적인 반달리즘을 막아낼 대책은 없을까? 이러한 반달리즘을 막기 위한 대표적인 국제기구가 유네스코. 유네스코는 ‘전시문화재 보호 협약’ 등 문화재 보호를 위한 국제 협약을 만들어 시행해오고 있다. 이 협약에 따르면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재는 식별표시를 해놓고 전쟁이 발생했을 경우 문화재 집중 분포 지역은 보호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러나 유네스코 및 국제사회의 수 차례에 걸친 경고와 청원에도 불구하고 탈레반 정권처럼 문화재를 파괴하겠다고 나서면 현실적으로 막아내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제사회가 경제 제재 등 강도 높은 압력을 가할 수 있도록 협약을 보완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세계 각국의 시민단체들도 문화유적 파괴를 막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편 유네스코는 현재 파괴된 바미안 불상을 원형대로 복원할 계획을 추진키로 하고 인터넷을 통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CNN방송 훼손상태 공개-"바미안 석불 형태 거의 사라져"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에 의해 완전파괴된 세계적 문화유산 바미안 석불의 흔적이 18일 미국 CNN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CNN방송이 입수해 이날 독점 보도한 비디오 테이프에 따르면 거대한 석불은 형태가 거의 사라지고 흔적만 겨우 남았다. 석불은 96년 아프가니스탄 내전 당시 다리와 얼굴 부분이 훼손됐지만 몸체 대부분은 완벽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탈레반 병사들은 두 개의 석불을 파괴하기 위해 로켓포와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탈레반 정권은 18일 “이번 주내로 기자들이 바미안 지역의 현장을 방문해 취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바미안 석불이 끝내 사라진 것으로 확인되자 불교국가인 스리랑카는 복원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탈레반 정권측에 불상 잔해를 팔 것을 제의했다.
라크쉬만 자야코디 스리랑카 대통령 보좌관은 “우리는 귀중한 역사적 기념물을 되살린 경험과 전문인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