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투박하지만 관객 울리는 멜로<선물>

  • 입력 2001년 3월 19일 19시 04분


복고풍 멜로 ‘선물’은 펑펑 울 수 있는 영화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충분히 만족하겠지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를 참지 못하는 관객이라면 불만스러울 영화다.

‘선물’은 세련된 치장, 로맨틱한 달콤함과 거리가 먼 투박한 멜로인데다 이야기에는 듬성듬성 구멍이 뚫려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허술한 짜임새를 불평하는 이까지도 기어이 울리고 마는 강력한 힘이 있다.

무명 개그맨 용기(이정재)의 아내 정연(이영애)은 시한부 인생을 살지만 남들을 웃겨야 하는 남편의 일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병을 숨긴다. 용기는 뒤늦게 아내의 병을 알게 되지만, 아내의 배려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모른 척 한다. 대신 아내에게 마지막 선물을 하려고 사기꾼인 학수(권해효) 형제에게 아내의 첫사랑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관객 울리기’에 관한 한, 이 영화는 비슷한 계보의 ‘편지’나 ‘약속’보다 한 수 위에 있다. ‘선물’의 남편과 아내는 통곡을 해도 시원찮을 상황인데도 아프다는 말 한 마디 못하고 꾹꾹 눌러 참는다. 이들이 뒤돌아서서 혼자 삼키는 속울음은, 배우가 먼저 대놓고 엉엉 울어버리는 기존 최루성 멜로 영화들보다 보는 이의 눈물샘을 훨씬 효과적으로 자극한다.

그러나 ‘선물’은 ‘아내가 죽어가지만 남들을 웃겨야 하는 개그맨’이라는 절묘한 설정을 갖고도, 조용필의 절창처럼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영화의 포인트가 개그맨의 비애, 웃음의 아이러니보다 불치병에 걸린 아내의 애처로운 자기희생 쪽에 맞춰졌기 때문. 이 영화로 데뷔한 오기환 감독은 충분히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소재를, 그저 애닯은 상황의 밑그림으로만 쓰고 말아 버렸다.

이영애는 화장기 없는 얼굴로 죽음을 준비하는 처연한 아내의 역할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이정재가 맡은 개그맨 역은 연기하기가 곱절은 어려웠을 터. 그래서인지 그의 연기는 다소 어정쩡하지만, 죽어가는 아내가 보는 앞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판토마임을 연기하는 마지막 무대에서의 열성은 높이 사야 할 것 같다.

실컷 울고난 뒤 남는 아쉬움은, 이야기의 허술함. ‘TV는 사랑을 싣고’처럼 정연의 첫사랑을 찾아나선 사기꾼 학수(권해효)형제의 코믹 연기는 자주 웃음을 선사한다. 그러나 중반부 이후 이들이 나올 때마다 뒤따라붙는 정연의 과거 회상 장면들은 한없이 상투적이고 드라마의 흐름을 자주 깬다.

병을 숨기는 아내의 심정은 공감할 수 있지만, 아내가 곧 죽는다는데 이를 모른 척 하는 남편의 태도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아내의 첫사랑을 찾던 도중 이들 부부가 같은 초등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는 사실을 남편이 뒤늦게서야 알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학수의 대사처럼, “부부간에 얼마나 대화가 없으면” 그런 것도 몰랐을까. 24일 개봉. 15세이상 관람가.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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