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와 비디오아트 등을 통해 디지털 시대에 책의 운명과 존재형태를 집중 조명한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강애란 교수의 ‘디지털북 프로젝트―사이버 북시티’ 전(23일∼4월3일 서울 소격동 금산갤러리와 아트선재센터·02―735―6317), 그림과 도자기 작업을 통해 동양 책문화의 정신을 선보이는 중견 작가 6인의 ‘책의 향(香)과 기(氣)’ 전(27일까지 서울 관훈동 갤러리 아트사이드·02―725―1020).
강애란 전이 열리는 금산갤러리 1층에 들어서면 관람객은 마치 미국의 한 대형 서점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뉴욕의 반스앤노블 서점 전경 사진이 어둠 속에서 벽면 전체를 덮고 있다.
그리고 그 앞에 실제 책들이 꽂힌 책상을 설치, 가상과 실제가 하나로 이어지면서 책 문화의 현장이 연출된다. 한쪽 구석에는 뉴욕 소호에서 구해온 미술전문 서적들로 꾸민 서가가 배치된다. 내부에 전등이 들어 있어 푸른 빛을 발하는 플라스틱 모형 책들이 종이책들 사이에 유난히 눈에 띈다.
2층 전시장은 용도폐기된 책들이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시체처럼 널부러져 있는 먼 미래 서고(書庫)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닥에는 플라스틱 책 모형 앞면에 동영상이 나오는 비디오 책들이 눈에 뛴다. 미래의 책의 운명과 그 변화된 형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3층은 대형 서점의 스틸 사진들이 벽에 걸리며 휴게실로 꾸며진다.
이 곳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아트선재센터 1층. 아트북 판매대에 빛을 발하는 책 10여권이 판매 중인 미술서적들 사이에 섞여 있다. 전시장을 벗어난 열린 공간에도 작품들이 전시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 교수는 비슷한 내용의 전시를 지난해 6월 일본 도쿄 나디프 서점(전시장 겸용)에서도 가져 주목받은 바 있다.
갤러리 아트사이드의 ‘책의 향과 기’ 전에는 고영훈 김병종 윤광조 이왈종 등이 참가했다. 고영훈은 극사실화로 책의 형태와 부피감을 나타내며, 윤광조는 책 모양의 도자기에 불경(佛經)의 글자를 새겼다.
이왈종과 김병종은 화첩 형태의 그림들을 통해 선비의 방안을 가득 메웠던 서기(書氣)를 느끼게 한다.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윤재갑씨는 “현대인들에게 시서화(詩書畵)가 어우러진 동양의 정갈한 책의 문기(文氣)는 한 여름밤의 시원한 빗줄기 같은 청량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윤정국기자>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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