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인만큼 뽑자" 비리-부정▼
▽공천헌금 실태〓내년에 전남지역 기초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려는 A씨는 공천만 받는다면 당이나 지구당위원장에게 헌금을 낼 각오를 하고 있다. 그는 98년 6·4지방선거 때 국민회의(현 민주당) 관계자로부터 기초단체장 공천 대가로 5억원을 요구받았으나 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 출마를 포기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그는 돈을 빌려서라도 공천헌금을 낸 뒤 당선되면 단체장 재직시 굳이 뇌물을 받지 않더라도 후원자 등을 통해 공천헌금으로 낸 돈을 충당할 길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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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돈 없인 못뛴다 |
충남도의원 B씨는 내년에 기초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려 했으나 공천헌금을 감당할 능력이 없어 고민 끝에 최근 출마 포기를 결심했다.
그는 지난번 도의원 선거에서 출마지역의 지구당 위원장이 공천헌금 1억원을 요구해 간신히 3000만원을 마련해 주었다. 내년 단체장 출마 때는 공천헌금을 수억원이나 요구할 것이 뻔한데 도저히 이를 마련할 길이 없었다.
영남지역의 한 국회의원(한나라당)은 요즘 지역구에 갈 때면 일정을 외부에 일절 알리지 않는다.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이 자신이 가는 곳마다 쫓아와 면담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는 지역구 행사에 참석한 뒤 목욕탕에서 쉬고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한 기초단체장 출마 희망자가 다가왔다. 그는 “지구당에 얼마를 내면 되느냐”고 물어 당황했다고 전했다.
전북의 한 기초단체장은 “대부분의 단체장들은 공천과 관련해 지구당 위원장의 마음을 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돈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체장 공천헌금액은 지난번 선거의 경우 영호남처럼 특정 정당의 지지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인구 50만명 이상이 10억∼20억원, 군소도시는 3억∼5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역의원은 5000만∼1억원, 기초의원은 2000만원 선이라는 게 정설.
실제로 95년 지방선거에서 호남의 한 도시에서 출마했던 L씨는 당시 국민회의의 실력자 2명에게 총 10억원, 지구당 위원장에게 1억∼2억원을 쓴 것으로 전해졌다. 98년 부산의 구청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K씨는 당시 “한나라당에서 공천을 받으려면 당운영비와 공조직 운영비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정당 공천독점 사라져야▼
▽문제점〓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이 정당의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의 실력자나 지구당 위원장 등에게 내는 공천헌금이 자치단체장 비리와 부정의 ‘핵심고리’가 되고 있다.
특정 정당의 공천이 곧바로 당선으로 연결되는 영호남 지역에서는 공천에 따른 뒷돈 거래가 특히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지난해 자치단체장 59명과 지방의원 224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정당공천이 부패유발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자치단체장은 72.9%, 지방의원은 88.2%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전남의 한 기초단체장은 “공천을 둘러싼 행태는 조선 후기의 매관매직과 다를 바 없다”며 “돈이 들어간 만큼 뽑아내야 하고 돈을 주지 않고 유력 정치인에게 매달려 공천을 땄다면 그의 부정한 청탁 등을 들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책은 없나〓현행 정치자금법에는 공천헌금을 주거나 받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으나 공천헌금 수수가 워낙 은밀하게 이뤄져 근절되지 않고 있다.
대구대 홍덕률(洪德律·사회학)교수는 “지역감정과 정당의 공천 독점권을 극복하는 것이 공천헌금 수수와 부정부패를 막는 첩경”이라고 말했다. 홍교수는 “지역감정에 편승해 공천을 마음대로 하는 풍토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정책 및 인물 중심의 선거가 되도록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유권자들의 의식이 개선되고 낙선운동 등도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정당공천의 경우 중앙당이나 지구당 위원장의 일방적인 ‘낙점’이 아니라 지구당에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 당원들이 선출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양기대·송인수기자·대전〓이기진기자>k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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