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그 괴로움이 폐부를 찢는 괴로움이라면, 이를 화면을 통해 표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대원의 <적루(적루)>
3권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바로 ‘피눈물’이다. 주인공들은 부모의 죽음에, 누이를 보내는 아픔에, 뒤늦게 깨달은 사랑에,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에 피눈물을 흘린다.
작품은 3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권은 ‘은수 이야기’ ‘윤 이야기’ ‘정 이야기’로 나뉘어 있다. 작품의 큰 줄거리는 세 문장으로 요약될 정도로 간단하다. 구 장군은 자신의 딸이 황후로 간택되지 않자 반란을 일으킨다. 왕의 딸 은수는 반란군에 쫓기다 칼에 맞고, 아들 윤은 도망친다. 도망친 윤은 10여년이 지난 후 세력을 규합해 왕권을 되찾는다.
하지만 이 간단한 이야기에 얽매어 있는 사람들의 인연과 삶은 복잡하다. 작가가 달리 마음 먹었다면 3권보다 훨씬 길게 얘기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유사한 이야기 구조를 지닌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봐도 3권은 짧은 편수다.
그래서인지 친절한 설명은 삭제되어 있다. 뼈대가 되는 서사가 존재하고, 빠른 속도로 플롯이 전개되며, 세로로 긴 칸에 클로즈업된 얼굴 표정을 통해 심리가 묘사된다. 자주 사용되는 피드백과 10여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 넘는 시간 구성 때문에 한참을 읽다가 다시 앞으로 넘어가는 일이 흔하다.
하지만 중심이 되는 인물들의 관계와 감정의 고조에 감염되면 내 마음에서도 똑같이 피눈물이 흐른다. 오빠 윤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성벽에서 몸을 던지는 은수, 그 은수를 구하려다 결국 자신도 몸을 던지고 마는 몽무, 정을 사랑하지만 떠나야하는 사미 등 우리도 은수와 몽무, 정과 사미의 애절함을 느낄 수 있다.
중국을 배경으로 반정과 역반정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 무협풍의 스펙터클도 맛볼 수 있다. 속도감 있는 연출은 칸의 수를 늘리지 않고 클로즈업과 교차 편집을 이용해 이야기에 풍부함을 더해준다.
이 작품이 김대원의 첫 장편 연재작이라는 사실도 놀랍다. 후속작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몇 안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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