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게는 일본의 경제불황과 정치혼란에서 원인을 찾는 사람이 많다. 도쿄대 고모리 요이치(小林陽一·일본 근대문학) 교수는 “정치 경제에 대해 자신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런 교과서가 나온 것”이라며 “과거를 미화하고 일본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우월감을 강조함으로써 자신감 부족을 감추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모임측이 만든 교과서의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의 역사’가 과거를 찬양할 뿐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지적했다.
세이케이대 가토 다카시(加藤節·정치철학) 교수는 “일본의 ‘대국’ 의식은 경제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경기가 후퇴하면 갑자기 의기소침해진다”면서 “그 반작용으로 새롭게 기댈 곳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자국중심적인 역사의식”이라고 분석했다.
93.8 | ‘역사 검토위원회’발족. 침략과 가해사실 부정하는 보고서 작성 |
96.6 | ‘밝은 일본 의원 연맹’ 결성 |
97.2 |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 결성 |
98.6 | 마치무라 노부타카 문부상 “현행 역사교과서는 편향돼 있다”고 발언 |
99.8 | 국기 국가법 제정 |
2000.3 | 지방도시 의원연맹, “현행 역사교과서는 문제 있다”며 개선요망서 문부상에 전달 |
8 | 일부 의원, 대정부질문서에서 “현행 역사교과서는 자학적 내용이 담겨있다”고 지적. |
2001.3 | 모리 총리, “교과서 내용이 유출된 것은 대단히 유감이다.”소장파의원 ”수정 요구는 내정간섭. 한국 역사교과서도 수정하라고 요구하라.” |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태평양전쟁 이전의 ‘강한 일본’을 그리워하는 세력이 현재의 일본사회에 엄존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집단이 집권여당인 자민당. 93년 8월 자민당은 ‘역사검토위원회’를 만들었다. 위원회의 최종 보고서는 모임이 지향해온 바와 같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를 비롯해 현 각료 6명이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자민당 내의 ‘밝은 일본 의원연맹’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과 각 도도부현(都道府縣)의 ‘교과서 의원 연맹’도 모임의 든든한 지지세력이다.
이들은 교과서 문제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내정간섭’이라 규정하고 일본 정부가 이에 대해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은 자민당의 독주를 견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국민도 정치권에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1955년 이후 몇 년만 빼고 장기 집권해온 자민당은 두려워할 상대가 없는 셈이다. 모리 내각이 9%대의 저조한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고 버텨온 것은 자민당 내의 파벌관계만 잘 이용하면 끝나는 일본정치의 병폐를 그대로 보여준다.
전후 일본이 안고 있는 ‘부(負)’의 유산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역사인식이 악용되고 있는 측면도 있다. 일본에서는 전후 체제를 청산하고 ‘보통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과거 일본이 저지른 ‘부끄러운 일’을 부인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모임측이 기존 역사교과서를 ‘자학사관’에 바탕을 둔 것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한 것이다.
이런 주장의 가장 큰 잘못은 가해자의 처지를 잊어버렸다는 점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는 “이는 ‘쇄국의 멘털리즘’이며 이것이 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모임이 펴낸 교과서”라고 비판했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모임과 같은 우익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다수의 일본인이 우익세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거나 논쟁을 벌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사회에는 국제화와 정보기술(IT)사회를 지향한다는 말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우경화 세력은 이런 말과는 상관없이 과거로의 회귀를 지향하면서 점점 ‘이상한 일본’을 만들어 가고 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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