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영 주일특파원 대담]"교과서 왜곡 파동을 보고…"

  • 입력 2001년 4월 5일 19시 38분


《일본의 역사교과서 검정을 둘러싼 파동은 당사국이라 할 수 있는 한국 중국은 물론 세계의 다른 많은 국가들로부터도 큰 주목을 받았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과거 침략의 역사를 갖고 있는 독일과 영국 국민은 이번 파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독일 쥐트 도이체 차이퉁의 극동담당 특파원 등으로 30여년간 일본에서 일해온 게브하르트 힐셰어(66)와 영국 가디언지의 도쿄특파원인 조너선 와츠와의 대담을 통해 살펴본다. 대담은 5일 오후 도쿄(東京)의 재일외국특파원클럽에서 가졌다.》

조너선 와츠〓오래간만입니다. 일본 역사교과서에 조예가 깊은 대선배와 말씀을 나누게 돼 영광입니다.

게브하르트 힐셰어〓반갑습니다. 일본 정부가 3일 역사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했는데 내용을 보셨는지요.

와츠〓교과서 원문을 보지는 못했지만 일본 신문 등에서 다룬 쟁점 부분은 모두 읽어보았습니다. 이번 역사교과서는 한마디로 지금까지의 교과서보다 훨씬 우익화된 것 같습니다. 과거 교과서에서 언급했던 전쟁 책임 부분이 축소됐는가 하면 침략을 미화하는 부분이 추가되기도 했지요.

힐셰어〓제가 처음 일본 교과서를 조사해본 것은 1971년 일본 천황이 유럽을 방문하기 직전입니다. 그 때만 해도 군위안부 문제나 난징(南京)대학살은 거의 언급되지 않아 상당히 놀랐습니다. 2, 3년 전 다시 교과서를 보았더니 19개 교과서 대부분이 가해사실을 다루는 등 꽤 진전이 있었습니다. 1982년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항의를 받고서 대폭 수정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번에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모임)의 교과서가 검정에 통과함으로써 이러한 진전이 완전히 역행하게 됐습니다.

와츠〓저는 특파원으로 일한 지 4년밖에 안돼 짧은 역사밖에 보지 못했군요. 95년 사민당 연립정권 때에 비하면 정치적인 분위기도 아주 달라졌습니다. 당시엔 아시아 피해국들에 사과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총리의 담화를 계기로 군위안부 재판에서 처음 이기기도 했지요. 난징대학살을 주제로 한 홍콩영화가 일본에서 상영되는 등 일본과 아시아 각국이 서로 가까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1심에서 이겼던 위안부 소송이 최근의 2심에서 기각되고 우익교과서가 등장하면서 다시 아시아 국가들과 거리가 벌어지게 됐습니다.

힐셰어〓‘모임’의 교과서는 역사적 사실 가운데 부끄러운 부분은 감추고 자신 있는 부분만 담아 어린이들에게 일본에 대한 자부심만 가르치려 하고 있습니다. 사실을 토대로 한 ‘역사’가 아니라 꿈을 심어주는 ‘동화’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피해국들은 정반대입니다. 얼마 전 싱가포르의 역사교과서를 봤더니 126쪽 중 80쪽이 일본에 침략당한 3년간의 역사를 다루었더군요. 그러니 자기 잘못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일본 어린이들이 어떻게 피해국 어린이들과 제대로 사귀겠습니까.

와츠〓일본은 과거 일본만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 서방국가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하고 있지요. 그러나 영국은 역사교과서에서 과거 영국의 범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영국군이 인도인을 대량 학살했던 암리츠 학살사건이나 중국 아편전쟁 등의 사실을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으며 최근에는 아일랜드에 대한 잘못도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도나 중국 아일랜드와 더욱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한 새로운 역사인식입니다.

힐셰어〓독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제2차대전의 적대국들과 40∼50년 전부터 역사문제를 논의해오고 있습니다. 폴란드 등 동유럽 피해국들에 대해서는 70년대부터 활발하게 교과서 문제를 서로 협의해 20세기에 일어난 일은 거의 해결했다고 봅니다. 앞으로는 19세기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도 연구해나갈 것입니다. ‘모임’측은 다른 나라도 나쁜 일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남도 나쁘다고 해서 자기 잘못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자기변명에 불과한 것이지요. 어느 나라건 각자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다른 나라와의 관계가 개선될 수 있습니다.

와츠〓이번 일로 한일(韓日), 중일(中日)간의 긴장이 높아졌는데 한국측의 내셔널리즘도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몇 년 전 한국에 처음 갔을 때 관광지 어느 곳에 가든 ‘왜놈이 수천명을 죽였다’는 식의 설명문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오히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98년 이후 꾸준히 추진해온 한일문화교류와 같은 정책이 서로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지요.

힐셰어〓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일본은 무조건 나쁘고 우리는 무조건 옳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역사든 100% 옳을 수는 없지요. 중국과 한국이 감정적으로 흥분하며 반발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어른에게 반항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국도 대일관계에서 좀더 여유를 갖고 어른스러운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정부와 언론이 냉정하게 대처해야 하겠지요.

와츠〓그래도 저는 한일 관계를 낙관적으로 봅니다. 우익화 경향은 일본 중앙정치의 문제일뿐 일반 국민은 양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90년부터 3년간 오사카에서 영어교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일본의 선생님들도 ‘교과서에서 전쟁책임 부분을 확실히 다뤄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한일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는 지금의 커다란 물결은 거스를 수 없다고 봅니다.

힐셰어〓일본 국민 중에도 한국과의 우호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평가해주었으면 합니다. 따지고 보면 한국과 일본은 먼 친척이 아닙니까. 이번 파동을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한중일 3국의 역사나 교육전문가들이 공동 연구를 통해 역사인식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게브하르트 힐셰어〓1935년에 독일에서 태어나 60년 프라이브루크대 법학부를 졸업했다. 67년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재단(FES) 일본사무소 초대소장으로 도쿄(東京)에 부임했다. 71년부터 독일 쥐트 도이체 차이퉁의 극동특파원(한국 일본 대만담당)을 지내다 지난해 정년 퇴직했다. 지금은 프리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FES 일본소장, 가나가와대 교수도 겸하고 있다. 일본 비평서를 다수 출간했으며 88년 한국에 관한 글 38건을 묶은 ‘한국 38회’를 펴내기도 했다. 일본인 부인과 1남1녀.

▽조너선 와츠〓1967년 영국에서 태어나 90년 맨체스터대(영문학)를 졸업했다. 90년부터 3년간 일본 오사카(大阪) 공립고교 등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한 뒤 93년 영국에 돌아가 런던대학 동양학부 및 아프리카학부에서 일본학을 연구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94년부터 홋카이도신문 런던지국 기자로 일하다 96년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영자지인 데일리요미우리 기자로 자리를 옮겼다. 97년부터는 영국 가디언지의 도쿄특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인 부인과 2녀.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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