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도 한국 바람이 뜨거웠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최근호에서 ‘일본 속의 한국’이란 커버스토리를 통해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한국 가요와 영화가 큰 인기를 끄는 등 한국 열풍이 뜨겁게 번지고 있는 현상을 다룰 정도였다.
그런 마당에 최근 2002년 월드컵 대회의 호칭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진 데 이어 이번에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가 발생해 착잡한 심정을 진정하기 어렵다.
일본은 교과서 내용의 수정이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가 교과서에 대한 검정을 해야만 정식 교과서로 채택되는데도 일본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당당하지 못한 태도이다.
문제의 교과서를 만든 측에서는, 패전 후의 자학적(自虐的) 사관(史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자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1988년 국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면서 군위안부였던 시로타라는 일본 여인이 남방전선에서 패전을 맞았는데, 당시 한국 여인들이 무더기로 트럭에 실려갔으며 정글에서 총성이 울린 뒤로는 다시는 그들을 보지 못했다고 증언한 언론 보도 내용을 소개했다.
이 여인의 목격담이 사실이라면 일본군의 이같은 행위는 패전으로 교전권을 잃은 후에 저질러진 일이어서 일반적인 전쟁범죄와는 다른 차원의 중대한 범죄이다. 불행하게도 이 여인은 자신이 다니던 교회 목사에게 그런 내용을 고백하고 얼마 뒤에 사망했다.
일본이 진정으로 과거사에 대해서 반성하려고 한다면 이 여인이 증언한 사실과 유사한 많은 사건들에 대해 증거가 인멸되기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관련 생존자들이 지금이라도 스스로 나와서 고해하고 참회하는 진정한 용기를 보여 주도록 해야 한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50주년이 되던 1991년 미국은 하와이에서 일본측 인사들도 초청해 전몰용사들에 대한 추모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려고 했다. 그러나 일본측은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총리의 참석을 거절했다.
1995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는 미국 대통령과 유럽의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의 의미와 교훈을 되새기는 행사가 거행됐다. 이 행사에서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가 50년만에 승전국 정상들과 공식 석상에 나란히 함께 설 수 있게 된 것은 독일의 많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1995년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데 대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라고 요구했으나 클린턴 대통령은 이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태평양전쟁이나 진주만 기습이 미국의 음모에 의해 유인된 것이라는 일부 일본 역사학자들의 강변이 이번 일본 역사 교과서 사태를 계기로 일본인들 사이에 뿌리내리지 않을까 염려된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전쟁을 일으킨 게 잘못이 아니라 전쟁에서 진 것이 잘못”이라는 힘의 철학으로의 회귀이다.
일본의 몰이해와 망언에 대해 우리가 감정적으로 흥분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성적으로 분노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며 이는 외교정책에 반영돼야 한다. ‘한일관계에 금이 가서는 안된다’는 논리가 우리 대일(對日) 외교의 약점과 부담이 되어서는 안된다.
독일의 시인 노발리스는 “부분적인 역사는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어떤 역사도 세계사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헛된 노력을 버리고, 세계사적 조명 속에서 과거를 인정하는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
2002년 5월 31일 서울에서 열리는 월드컵 개막식은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 정상들이 모두 참석해 화해의 손을 잡고 아시아의 평화시대를 확인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정몽준(2002년 월드컵 조직위원장·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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