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행(趙義行·51·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씨. 새벽 3시 서울 여의도 공원을 출발해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되돌아오는 35㎞를 하루도 빠짐없이 달리는 것이 조씨가 새해 첫날 달리기를 시작하며 세운 목표다.
지금까지 뛴 거리는 어느새 3500여㎞. 조씨의 달리기는 어느덧 주위에도 알려져 10여명의 달리기 동호인클럽이 생겼다.
조씨가 달리기를 시작한 데는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 69년 고교 졸업후 공장 경리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조씨는 타고난 눈썰미와 성실을 밑천으로 17년만인 86년에는 금형제조공장을 차려 독립했다. 한창 사업이 잘될 때는 직원 10여명을 두고 연간 4억∼5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다 날벼락같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맞아 조씨의 회사는 부도가 났고 집까지 경매에 넘어갔다.
그 이후 그의 인생은 숨가쁜 고갯길이었다. 넓은 마당이 있는 2층 주택에서 부인과 두 아이들을 데리고 지하 단칸방으로 옮겨야 했다. 빚쟁이를 피해 도망다니던 조씨는 한동안 서울역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사는 게 구차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도 생각했다.
분노와 자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조씨가 삶의 모습을 바꾸게 된 계기는 바로 달리기.“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려면 제 자신부터 추슬러야겠더군요.”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몸은 고되지만 이상하게도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입니다. 달리기를 마치고 나면 오늘도 해냈다는 뿌듯함과 함께 힘차게 하루를 시작할 힘을 얻어요.”일도 다시 풀리기 시작했다. 친구가 경영하는 공장 일을 도와서 모은 돈과 주위의 도움으로 지난해 말엔 기계도 한 대 장만했다. 오전 9시면 영등포구 문래동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일거리가 많을 때는 꼬박 밤을 지샐 때도 있다. 그런 날도 조씨의 달리기는 어김없이 계속됐다.
몸에 무리가 왔다. 다리에 피가 잘 돌지 않아 발목이 퉁퉁 부어 올랐다. 병원에선 당장 수술을 받고 한동안 운동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씨는 단호하다.
“움직일 수 있는 한 계속 뛸 겁니다. 기어서라도 갈 겁니다. 달리기를 포기하면 제 인생이 다시 엉망이 될 것만 같아서요.”
<현기득기자>ratio@donga.com